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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눈이 온 날 아침에

by 아네모네(한향순) 2014. 12. 4.

 

 

 

눈이 온 날 아침에

 

한 향 순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눈이 내려서 하얀 세상이 되어있었다. 뉴스에서는 밤사이 조용히 내린 눈 때문에 출근길 교통대란이 우려된다고 하지만 하얀 설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카메라 가방부터 챙긴다. 어디로 가야 멋진 설경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은 천리 밖인데 용기가 나지 않아 집에서 가까운 민속촌으로 방향을 정한다.

 

민속촌은 내가 자주 가는 장소이지만, 어느 계절에 가도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을 만날 수 있고 볼거리와 재미를 선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추억을 선물하기도 한다. 장독대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속의 나를 만날 수 있고 가슴이 화롯불처럼 따뜻해져 온다. 하얀 설경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축복처럼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서운했던 마음이나 옹졸했던 생각들도 스르르 풀리고 오래 잊고 있던 친구나 한동안 소식이 끊긴 그리운 이들도 생각난다.

 

십여 년 전, 서울에서 오래 살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왔을 때는 삶의 뿌리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불어 닥친 재난으로 빛도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서 삶의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다행이 집근처에 있는 산을 매일 오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한 자리에 우직하게 서서 사람을 품어주는 나무와 숲과 바위들을 보면서 겸허해지려고 애썼고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해서 서서히 마음의 상처가 아물면서 이 동네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과도 많이 친숙해지고 민속촌처럼 좋아하는 곳도 생겼다. 누구의 노래처럼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 아니던가.

오늘은 오래 소식이 없던 이들에게 잘 지내느냐고 전화라도 걸어 안부를 물어야겠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건재하고 있다고 소식을 주어야겠다.

 

 

                                                                        

 

  < 불교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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