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은 감포를 가는 도중 감은사지를 들렸다. 오랫만에 다시 가본 절터였지만
경주와는 달리 조용하고 쓸쓸한 분위기와 탑의 규모나 위용에 놀랄뿐이었다.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나무들과 오래 된 석탑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신라의 문무왕은 해변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려 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위독하게 되었다. 문무왕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 것”을 유언하고 죽자 이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안장하였으며,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라 하였다.
그 때 금당(金堂) 아래에 용혈을 파서 화룡(化龍)한 문무왕이 해류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신문왕은 동해의 호국룡이 된 문무왕과
삼십삼천의 아들로 태어난 김유신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보물인
신비스러운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감은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2기의 화강석제 석탑은
동·서 두 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이다. 2중기단 중의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面石)을 같은 돌로 만들었으며,
모두 12장의 석재로 이루어졌고, 상층기단은 면석을 12장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고사목이 된 이나무는 용당 탑마을의 당산나무였다
해설사에 따르면 무속인들이 하도 많이 찾아와 막걸리를
그대로 붓는 바람에 시름시름 앓던 한쪽 나무가 죽고
그마저 남은 한쪽 나무도 죽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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