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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정열과 예술의 도시 바르셀로나

by 아네모네(한향순) 2015. 3. 21.

 

 

 

정열과 예술의 도시 바르셀로나

 

한 향 순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년 전 중남미를 여행하면서부터였다. 그 넓은 땅덩어리의 남미 국가들이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페인어를 쓰고, 스페인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무적의 스페인 함대들이 신대륙으로 쳐들어가서 여러 나라를 정복했다지만, 어쩌면 남미 국가들은 언어부터 문화까지 스페인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하물며 도시이름이나 거리이름도 스페인과 같은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스페인이 어떤 나라였기에 이토록 큰 대륙을 문화로 점령하고 있는지 너무도 궁금해졌다.

 

밤늦게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몸은 젖은 솜처럼 무겁고 힘든데 시차 때문인지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칵테일을 만들어 여행이 아무 탈 없이 끝나기를 기원하며 간단히 건배를 하였다. 서너 시간이나 잤을까 일찍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남는 시간에 반신욕을 하고 호텔 밖으로 나오니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정원에는 커다란 올리브나무와 기름을 짜는 오래된 기계가 비치되어 있었다.

 

 

어제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하니 6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중년 부인이 마중을 나왔는데, 설마 그분이 현지 가이드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는 우리 교민이 얼마 되지 않고 유학생이 별로 없어서 스페인에서 40년을 넘게 살고 있다는 그분이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 나이에도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여인의 열정과 용기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제2의 도시이며 황영조 선수가 우승한 1992년 올림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유명한 피카소와 천재 건축가인 안토니 가우디를 배출해낸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상업도시이기도 한데, 아직도 카탈루나 사람들은 스페인에 꾸준히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안토니 가우디의 최후의 걸작인 성가족성당으로 향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불리기도 하는 이 성당은 가우디가 1883년부터 모든 제작과 건축을 책임지고 43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곳이다. 성가족성당은 원래 가우디의 두 스승이 시작하다가 가우디가 31세 때 이어받았다. 처음에는 네오고딕 양식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모든 양식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었는데, 가우디는 모든 정성을 쏟아 성당을 짓다가 채 완공도 하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성당은 18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위로 12제자의 탑이 둘러싸고 안으로 네 명의 복음 전도자의 탑이 있고 중앙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탑이 세워진다. 예수와 성모를 상징하는 두 개의 탑, 예수의 탄생과 수난, 그리고 영광을 표현한 상징물들이 있다. 성가족성당은 짓기 시작한지 130 여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건립중이다. 건축에 필요한 자금이 후원자들의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느려 적어도 200년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한쪽에선 100년 동안의 세월에 삭아가는 옛 것을 보수하고,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기둥을 올리는 신축공사를 진행하는 진귀한 모습을 보여준다.

 

탄생의 파사드가 있는 정문 앞쪽의 작품들은 얼마나 정교하고 부드러운지 돌이 아니라 마치 진흙으로 빚어 놓은 것 같았다. 예수의 탄생과 유년시절을 조각해 놓은 곳이 있는데, 중앙의 사랑의 문에는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리는 수태고지와 성모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왼쪽 소망의 문에는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을 하는 장면을 마지막 오른쪽인 믿음의 문에는 동방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가 탄생하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수난의 파사드는 예수의 마지막 삶 중 마지막 이틀을 표현하고 있다. 가우디가 기획한 것으로 제일 윗부분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며 그 아래로 한 여성이 수건을 펼치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베로니카라는 여성이 자신의 손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고 한다. 수난의 파사드 오른쪽 아래로 수탉이 보이고 한 남자가 괴로워하는 조각상이 보인다. 예수의 예언대로 베드로가 수탉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한다는 내용이다.

 

반대쪽에는 남자가 악마와 키스를 하고 있으며, 악마의 밑으로 파충류의 꼬리와 숫자판도 보인다. 유다의 키스를 조각한 이 장면은 유다가 악마와 손을 잡고 예수를 배반하는 장면으로 숫자판은 예수가 죽었을 때 나이를 뜻한다고 한다. 수난의 파사드는 카탈루냐 조각가 호세 마리아 수비락의 작품이다. 수비락은 남성적인 힘과 선이 뚜렷한 각진 조각상을 많이 만들었는데, 세밀한 것을 생략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단순 기법의 조각가로 유명하다.

 

 

 

 

성당으로 들어가면 원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받아 내부를 밝히는 가운데 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식물과 동물모양의 거대한 조각들이 대 자연을 연상시킨다. 가우디는 맨 처음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했다고 하는데, 성서의 모든 이야기를 조각으로 구조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부에 들어가 천정을 올려다보면 마치 나무 숲 아래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천정에서 눈을 떼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건축 관련 전시관이 있는데 무슨 모래주머니 같은 것이 수도 없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가우디가 성가족 성당의 구조계산을 일일이 수 작업하여 하중계산을 하였고, 건축양식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쓰였던 역골조의 모습이었다. 가우디는 그것들 하나하나의 무게를 계산하여 설계를 하였다니 그의 천재성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디자인에 치중하다보면 구조가 허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걸작임을 알 수 있었으며, 그러기에 건축물이 완공 되지도 않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나 보다.

가우디의 작품에 매료된 우리는 성가족성당 외에도 가우디의 걸작 중의 하나인 구엘공원과 카사바트요와 카사밀라등 다른 작품을 보러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여행작가> 2015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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