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묵은 김치처럼 오래 숙성된 친구에게서 여행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승낙을 했다.
출사여행도 아니고 열흘쯤 다녀오는 패키지 여행이니 따로 신경 쓸 일도 없을 테고
그저 편안하게 바람이나 쏘이고 오자는 안이한 생각에서였다.
더구나 예술가들이 동경하는 남 프랑스와 TV에서 보았던 아기자기한 발칸 국가들의
아름답던 풍경들이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더욱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짐을 싸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DSLR카메라를 가져 갈 것인가. 아니면 남들처럼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스케치하듯 스마트 폰에 담아 올 것인가 갈등에 휩싸였다.
그런데다 큰 카메라를 가져가면 배낭에 등산복이나 작업복을 입어야 되는데,
그저 모든 걸 포기하고 편안한 평상복을 입고 모처럼 힐링을 할까.
며칠간 고민을 하다가 언제 그곳을 또 다시 가보겠는가. 카메라 없이 갔다가
후회하지 말고 되도록 가볍게 카메라 가방을 꾸미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때부터 욕심에 눈이 멀어 고생문이 열리는 것을 왜 몰랐을까.
공항에 도착하여 일행들을 만나보니 30~50대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연배도 있긴 했지만 지역 특성상 젊은 여인들이 많이 선호하는 곳 같았다.
나이든 티를 안내려면 맨몸에도 열심히 쫓아다녀야 하는데, 하물며
무거운 카메라에 사진까지 찍으려니 매일 강행군에 파김치가 되었다.
그러나 타고난 체력 하나로 열흘을 버티며 별탈 없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으니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사진은 그저 스냅 정도로 추억의 흔적을 담아 왔을 뿐이다.
인천 공항에서 12시간 비행을 한 후, 이스탄불 공항에서 4시간을 기다리고야
다시 프랑스행을 타고 3시간을 간 후에 목적지인 니스 공항에 닿을 수 있었다.
환승장인 이스탄불 공항은 10년 전보다 깜짝 놀랄 정도로 복잡하고 커져 있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커플룩을 입고 카페 곳곳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걸까? 하얀 화면 속의 남자는 화살표를 따라 어디로 가는걸까.
마치 인종 백화점을 보듯 무심히 흘러가는 군중들의 행보를 구경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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