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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오래 전의 여행

필리핀 팍상한 폭포 (2002, 6)

by 아네모네(한향순) 2010. 7. 1.

 

국내는 한창 월드컵의 열기로 들끓고 있던 2002년 초 여름날이었다. 열한 명 중년여인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며칠정도 집을 비우고 여행을 떠나는 일에 반란이라는 표현이 과장일지는 모르지만, 잠시 집안일을 젖혀놓고

 

나오는 일마저도 비장한 각오가 없으면 안 되는 모두 소심한 주부들이기 때문이다.

 

설렘과 기대 속에 마닐라행 비행기에 오르며 우리는 마치 소녀처럼 들떠서 흥분하고 있었다.

 

네 시간 정도 지나 기내의 창문으로 짙은 어둠이 몰려올 즈음, 우리는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여 가이드의 안내로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필리핀은 다양한 고유문화와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나라다. 7,10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스페인의

 

 통치가 계속되던 16세기에 걸쳐 필리핀 민족주의 부흥을 위한 독립운동이 계속되었다.

 

또한 마닐라는 옛 전통의 고매함과 현대적 우아함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각자 두 명씩 파트너를 정해 방을 배정 받았는데, 전체 인원이 홀수인 관계로 우리 일행은 셋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다행이 우리 방은 그 중에 제일 넓고 전망 좋은 곳에 있었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바라보니 도시 분위기는 대체로 어둡고 스산하였으나, 우리는 모처럼 집을 떠난 해방감

 

때문인지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만에 낭만적인 밤을 보냈다.

 

필리핀에서는 딸을 살림 밑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여아선호사상 경향이 있다.

 

그래서 팍상한 폭포수를 맞으면 딸을 낳는다는 미신 때문에 수많은 필리핀 여성들이 몰려든다.

 

유월 중순 마닐라의 날씨는 예상보다는 그다지 덥지 않았다. 더구나 버스 안은 어찌나 냉방이 잘되어 있는지

 

오스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곳 사람들은 모든 전력을 아꼈다가 냉방을 하기 때문에 호텔에도 대부분 조명은 어둑한데 비해, 냉방은 너무

 

잘되어 있어서 오히려 추울 지경이었다.

 

 

다음날은 시내에서 차를 타고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팍상한 폭포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세계 7대 절경의 하나이며 필리핀을 대표하는 관광지, 팍상한은 세계 7대 절경의 하나에 속하며 필리핀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마닐라 동남쪽 105km지점에 있는 폭포로 최고 낙차가 100m에 이른다.

 

'방카'라는 통나무배에 올라 사람의 순수한 힘으로 밀고 끌며 열대림을 대략 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쏟아지는 폭포수를 만나게 된다.

 

그중 가장 큰 폭포가 팍상한(Pagsanjan) 폭포이며, 폭포를 보고난 후에 급류를 쏜살같이 내려오는 스릴 만점의

 

급류타기가 유명하다. 이곳은 또한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등 영화의 촬영지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며,

 

마닐라 시에서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딸을 살림 밑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여아선호사상 경향이 있다.

 

그래서 팍상한 폭포수를 맞으면 딸을 낳는다는 미신 때문에 수많은 필리핀 여성들이 몰려든다.

 

유월 중순 마닐라의 날씨는 예상보다는 그다지 덥지 않았다. 더구나 버스 안은 어찌나 냉방이 잘되어 있는지

 

오스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곳 사람들은 모든 전력을 아꼈다가 냉방을 하기 때문에 호텔에도 대부분 조명은

 

어둑한데 비해, 냉방은 너무 잘되어 있어서 오히려 추울 지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다본 시내풍경은 마치 우리나라의 60년대 모습을 생각나게 하였다. 특히 필리핀은 빈부의 격차가 심해서

 

인지,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도시 빈민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1960년쯤 필리핀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높았다고 하는데, 그동안 위정자(爲政者)들의 부정부패(不正腐敗)의 결과로

 

지금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가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자, 푸른 초원에 열대 우림의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는 장관(壯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는 야자나무와 바나나나무, 그리고 원색의 꽃과 나무들이

 

온갖 자양분과 물기를 머금은 듯 조화를 이루며 싱싱하게 서있었다. 멋진 풍광 때문인지 이곳에서 영화 촬영을

 

많이 했다는데, 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많이 촬영했다고 한다.

 

드디어 팍상한 폭포가 있는 강가에 도착하자, 우리는 두 명씩 짝을 지어 ‘방카’라는 통나무배에 올랐다.

 

배 앞과 뒤쪽에는 원주민인 보트 맨 둘이서 노를 저으며 우리의 항해를 도와주었다. 강의 양쪽은 기암절벽으로 둘러

 

쌓여져있는데, 그 사이로 열대의 나무들이 무성하게 푸르러서 절경(絶境)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언젠가 본 낯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속에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카누를 타고 기막힌

 

풍광에 도취해있었다. 강물은 그다지 푸르지 않았는데도 물은 제법 맑고 깨끗해 보였다.

 

평평한 강의 중심부를 지나자 강의 폭이 좁아지며 바위와 커다란 돌들이 물살을 가로막고 있었다.

 

급류를 거슬러 올라야하는 보트는 심한 용트림을 해야만 했다. 보트 맨들이 배에서 내려 숙련된 기술로 우리를 태운

 

보트를 밀고 가는 모습은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배가 아슬아슬하게 계곡을 빠져 나와 드디어 폭포에 다다르자, 그곳에는 뗏목을 타고 폭포를 맞고 돌아오는 코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거센 폭포의 물살을 맞으며 소원을 비는 사람은 나름대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 팀도 뒤뚱거리는 뗏목에 올라 폭포에 다다르니, 굉음을 내며 사정없이 쏟아지는 물살에 흠씬 매를 두들겨 맞은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며 스릴을 만끽하는 아이들처럼 우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두 번이나 폭포를 맞고 돌아 나왔다.

 

중년 여인들이 물에 빠진 생쥐모양이 되어서도 아이들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다시 보트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훨씬 편하고 수월하였다. 좁은 계곡에서도 흘러내리는 물살을 따라 방향만 잡으면

 

 배는 쉽게 빠져 나왔다. 한유(閑裕)로운 마음으로 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무슨 일을 하던 순리(順理)를 따르지 않고 역

 

행(逆行)하는 일은 마치 배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다음날은 따가이따이라는 관광지를 구경하였는데, 그곳은 휴화산의 분출구로 작은 우리나라의 백록담을 연상시켰다.

 

산의 높이나 규모는 한라산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작았지만 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섬 속의 분화구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노점상에 들렸는데 싱싱하고 맛있는 열대과일이 얼마나 싼지

 

놀랄 지경이었다

 

. 망고나 작은 바나나는 물론, 파인애플이나 통째로 들고 빨아먹는 파파야까지 한국 돈으로 이삼천 원이면 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열대과일의 천국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잠시 잊었던 집과 가족들을 떠올리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록 삼박 사일의 짧은 여행이었

 

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낀 필리핀 여행이었다.

 

그래서 얼마동안은 행복했던 여행의 여운이 지루한 우리 일상에 싱싱한 활력소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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