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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9. 13.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오래 꿈꾸어 왔던 남미여행을 결행하게 된 것은 올해 갑년을 맞는다는 핑계였다. 고작 여행사를 통해서 가는 3주 정도의 패키지여행이지만, 여러 가지로 나에겐 큰 모험이었다. 우선 집안의 대소사를 피해 부부가 한 달 가까이 집을 비우는 것도 쉽지 않았고, 과연 체력도 버티어 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오래 준비를 해왔지만 여행경비를 마련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무튼 들뜬 마음으로 인천공항에서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LA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페루의 리마까지 8시간을 날아왔다. 리마공항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리우데자네이루에 기착할 때까지는 이틀정도가 걸렸다. 멀리 오느라 지쳐서인지 처음에는 공항에 난데없는 태극기를 들고 마중 나온 가이드가 별로 반갑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낙천적이고 경험이 많아서인지 유머가 풍부하고 성실하게 설명을 해주어서 곧 친숙해질 수 있었다. 이틀 동안의 관광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자기가 브라질에 오게 된 동기며 처음 이민을 와서 고생하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이야기 해주었다. 낯선 땅에 와서 모르는 언어를 배우며 살아가는 일이 어디 쉬웠겠느냐고 짐작은 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목이 메어서 모두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는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분을 믿고 이민을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께 투자 명목으로 전 재산을 맡겼는데, 어이없게도 사기를 당해 알거지가 되었다고 했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굶길 수 없어 눈물로 김밥장사를 하며 목숨을 지탱했다고 한다. 그 후 타국 땅에서의 고생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산 덕분에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한다는 경험담이었다.

 

  같은 동포가 도움을 주기는커녕 보따리를 뺏는다는 말처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하고 모두 의아해 했지만, 교민사회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기극이라고 한다. 그래도 지금은 열심히 노력한 만큼 조국을 위해 좋은 일도 하고 생활을 즐길 만큼 여유도 생겼다고 한다. 우리는 그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격려와 박수를 쳐주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인사를 뒤로 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 행선지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파라과이 등 세 나라의 접경지대인 이과수 국립공원이었다. 이과수 공항에 내리니 외모도 수려하고 말솜씨도 매끄러운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역시 오래전에 부모님과 함께 파라과이로 이민을 왔는데 이국 생활에서 파란만장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더구나 신부는 꼭 한국여자를 데려오고 싶어서 몇 년 전에 한국에 나가 신부 감을 소개받았는데, 결혼을 하기까지의 사연은 한편의 소설 같았다.

 

  더구나 요즘 남미의 경기가 점점 나빠지기에 자신의 선택에 많은 후회가 따르는 것 같았다. 하기는 3,40년 전만 하더라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는 우리보다 훨씬 경기가 좋아 전 재산을 정리하여 이민자들이 남미로 몰려들었다. 한국 사람은 어딜 가나 부지런하여 생활기반은 잡았으나 엄청난 환차손 때문에 다시 고국으로 들어오기는 힘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그가 먼 외국에서나마 부모님께 효도하며 든든한 삶의 뿌리를 내리기를 소망하며 다음 관광지인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하기 전부터 우리 일행인 K사장 부부는 들떠있었다. 그것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던 10여 년 전에 이민 간 친구를 만나는 기대감에서였다. 친구가 보고 싶어 선물보따리를 잔뜩 사들고 먼 여행을 감행한 그들 부부의 들뜬 마음이 우리에게도 전염이 되어선지 덩달아 그들이 궁금해졌다. 드디어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하여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그들을 보며 우리들도 마음이 찡해 왔다. 그러나 너무도 의아한 것은 마중 나온 친구부부의 모습과 행색이었다. 그 부부는 비쩍 말라 마치 아픈 사람 같았으며 나이도 친구보다 10년은 늙어보였다.

 

  K사장 부부는 친구네와 쌓인 회포를 푸느라 관광일정도 마다하고 이틀간은 보이지 않더니 마지막 저녁식사인 <탱고 디너 쇼>자리에 친구 부부와 함께 나타났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에게 친구부부를 소개하며 그동안 친구가 살아온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정말 기구절창 할 사연이었다.

 

  그들은 젊지도 않은 50대 나이에 장성한 아들 둘을 데리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그러나 철썩 같이 믿었던 지인에게 속아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젊지도 않은 그들이 겪었을 고생이 눈에 보이듯 짐작이 되었다. 지금은 열심히 일하는 아들들 덕분에 안정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러자 그들이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외모와 의외로 초라한 행색에 대한 의문이 저절로 풀렸다.

 

  외국에 사는 중국인들은 자기네 교포가 이민을 오면 서로 도와주고 지원을 해주어 조금이라도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교포들은 이상하게도 악의로 이용을 한다거나 사기를 쳐서 보따리를 뺏는 짓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국생활이 만만치 않고 힘드니 동포의 등을 치거나 나쁜 짓이라도 해서 먹고 살려고 했겠지만 너무 잔인하고 씁쓸한 이야기였다.

 

  요즘 폭넓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나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서 해외에 나온 젊은 층을 제외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민 보따리를 꾸린 장년들은 거의 경험했던 일화일지 모른다. 페루에서 고산증세에 시달리며 비지땀을 흘리고 안내를 하던 뚱뚱한 가이드도 울먹이며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남미 일대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교포들에게는 흔한 이야깃거리라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우리나라가 얼마나 빠른 기간 동안 고속적인경제성장과 발전을 해왔는가 알게 되었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고국에서 얼마나 안이한 생활을 해왔는지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교포들은 어디에서나 부지런하고 성실한 근면성 때문인지 모두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는데, 미흡한 것은 단결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지만, 서로가 잘되었을 때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축하해 줄 수 있는 성숙한 국민성을 겸비할 수만 있다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 곳곳에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피땀 흘리며 고생하는 우리의 교포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었고 우리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여행이었다.

 

 

                                                                                                                         200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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