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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손톱 밑의 가시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9. 13.

손톱 밑의 가시

 

 

  드디어 그놈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두 달 가까이 그렇게나 애를 태우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놈의 몸체는 불과 3mm도 안 되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하여 핀셋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확연히는 모르겠고 그저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후련할 뿐이었다. “아휴 그렇게 애를 먹이던 것이 이놈이었네요.” 진땀을 흘리며 고군분투하던 의사 선생님도 의기양양하여 핀셋을 들어보였다.

 

  구정 전날, 명절 음식을 만들며 눈 코 뜰 새 없이 분주한데 검지에 무언가 따끔하며 이물질이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돋보기를 쓰지 않은 눈으로 손가락을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약간의 통증만 전해져왔다.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바쁜 와중에 손가락만 붙잡고 있을 수가 없어 통증을 무시하고 일손을 놀렸다.

 

  명절 준비가 거의 끝나가는 밤이 되어서야 아이들에게 가시가 박힌 것 같으니 살펴보라고 손가락을 내밀었으나 그놈은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영 자취를 감춰버렸다. 바늘로 비집어보고 족집게로 헤쳐보아도 따끔거리는 통증만 남을 뿐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어디에도 가시가 박힐만한 틈이 없었는데 생선을 손질하다가 들어갔는지 미심쩍을 뿐, 찾지도 못하고 영 찜찜했다.

 

  더구나 그때는 명절 연휴중이어서 치료를 하지도 못하고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손가락이 벌겋게 부으면서 욱신욱신 쑤시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손가락에 바람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통증이 심해졌다. 남의 커다란 고통도 내 손톱 밑의 가시만 못하다더니 조그만 이물질 하나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연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병원 문을 열자마자 단숨에 달려갔더니 의사 선생은 우선 염증을 가라앉혀야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며칠 동안의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방해 주었다.

 

  또한 균이 들어가지 않아야 되니 당연히 손에 물을 대지 말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의 고행은 시작되었다. 늘 손에 물을 묻히고 사는 주부가 물을 멀리하려니 이만저만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부엌일을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는 고무장갑이라도 낄 수가 있지만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을 때, 샤워를 할 때는 남의 손을 빌릴 수도 없어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조그만 가시 하나에도 어쩌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에 기가 죽었다.

 

  게다가 건망증 때문에 번번이 손을 물속에 넣었다가 기겁을 하기가 다반사였다. 그럴 때면 아픈 손가락에 물이 들어가 염증이 심해지는 건 아닌가 싶어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아무튼 매일 하던 수영도 못하고 며칠 동안 근신하듯 지내다가 염증이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기에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가시를 찾아보자고 마취도 안 시킨 손가락을 헤집기 시작하였다. 가시가 너무 미세하여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가 않으니 감각에 의해서 찾을 수밖에 없다며 핀셋으로 여기저기를 쑤셔댔다. 그러나 가시 때문에 아픈 건지 생살을 찢어서 아픈 건지 무서운 통증만 있을 뿐, 가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레이저로 가시를 분쇄하는 방법을 시도한다며 짐작 되는 곳에 레이저를 집중 공격했다.

 

  레이저 처치 후, 상처 난 곳에 붕대를 감아 두 배로 커 보이는 검지를 신주단지 모시 듯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그럭저럭 통증도 가라앉고 가시도 빠진듯하여 쉬었던 수영장에도 다시 나가고 밀렸던 일손도 빨라졌다. 그러자 다시 손가락이 뜨끔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아직도 아픈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쉽게 짐작한대로 가시가 들어 간 것이 아니고, 신경조직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미세한 물체가 엑스레이에 잡힐 리도 없고, 무조건 외과에 가서 생살을 째고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을까 싶어 지인들에게 묻거나 인터넷을 뒤져 민간요법을 다 동원해 보아도 통증은 줄어들지 않고 다시 욱신거렸다.

 

  이제는 모든 신경이 손가락으로만 집중되어 일할 의욕도 없고 밥맛도 떨어졌다. 최후의 방법으로 병원에 찾아가 다른 처치를 의뢰해 보려고 할 때였다. 의사 선생님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찾아보자고 진땀을 쏟은 지 얼마 후, 드디어 가시를 찾아낸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티끌만큼 작은 것이 들어가서 두 달 동안이나 고생을 시킨 것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리 보면 우리 인체의 세포는 굉장히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일까 말까한 미세한 가시 하나도 포용을 못하고 무서운 통증을 일으키니 말이다.

 

  어쩌면 인체의 세포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알고 있던 지식이나 믿고 있던 고정관념 속에 다른 의견이 들어오면 사람은 우선 긴장을 하고 배타적이 된다. 그것은 각자 생각의 틀이 얼마나 바꾸기 힘들고 견고한 것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자기와 다른 의견들이 마치 가시처럼 자기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다.

 

  요즘 세간에는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이다. 졸속 행정으로 국민을 불안에 빠트린 정부도 문제지만 소고기 문제뿐 아니라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로 가뜩이나 불안해진 경제를 더욱 궁지로 몰아가는 과격한 시위도 문제이다. 모든 것은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배타적인 사고의 산물인 것이다.정부와 시위대 사이에도 오해의 가시가 뽑히고 오래 쌓인 갈등이 해결되어 하루 빨리 화합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뿐이다.

 

                                                                                                                              200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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