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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티베트 여행

에필로그

by 아네모네(한향순) 2014. 9. 5.

 

 

티베트의 여행기를  끝내면서 그린 에세이에 실었던 글 <풍마 룽다와 타르초>를 다시 읽어본다

 

 

 

풍마(風馬) 룽다와 타르초

 

한 향 순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들이 빙 둘러 쌓여있는 천상의 고원 히말라야. 나무 한그루 없는 거친 황야에는 어김없이 오색 깃발 무더기인 룽다와 타르초가 위안처럼 꼭 나타나곤 한다. 정작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티베트의 풍경들을 TV로 보면서 마치 전생에 내가 살았던 고향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랫동안 티베트에 관한 수많은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서 가보지 못한 곳의 열망과 꿈을 키웠기 때문일까.

 

티베트 사람들은 혹독한 기후와 황폐한 환경에서 오직 부처님께 의지하며 더 나은 내세를 꿈꾸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들의 발길이 닿은 곳에는 항상 알록달록한 오색 깃발의 룽다와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타르초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은 불교의 경전과 기도문을 적은 깃발로 청색은 하늘, 노랑은 땅, 녹색은 바다, 백색은 구름과 적색은 불을 나타내며 불성과 생명을 상징하는 우주만물을 의미한다.

 

룽다는 긴 장대에 세로 줄로 매단 한 폭의 기다란 깃발로,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바람을 박차고 달리는 말갈기와 비슷해서 바람의 말, 풍마(風馬)라고도 한다. 타르초는 오색의 네모난 깃발을 길게 엮어 바람에 날리게 한 것으로 얼핏 보면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만국기를 연상하게 한다.

 

 티베트 인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바람에 깃발이 한번 펄럭일 때마다 거기에 적힌 경전을 한번 읽은 것으로 생각하며, 깃발이 바람에 완전히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걸어 둔다고 한다. 룽다에는 옴 마니 반메흠 같은 만트라, 경문이 가득 씌어있다.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서 모든 중생들이 해탈에 이르기를 바라는 티베트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몇 년 전, 네팔 여행을 할 때, 히말라야가 보이는 포카라와 티베트 난민촌. 그리고 석가모니가 탄생하신 룸비니에서 많은 룽다와 타르초를 처음 보았다. 룸비니에서는 커다란 아름드리 보리수나무에 수많은 타르초를 걸어 놓았는데, 거센 바람에 펄럭이는 오색 깃발들은 저마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푸드득 푸드득 소리를 내고 있었다.

 

굵은 저음의 남성적인 소리를 가진 룽다와 가늘지만 다양한 소리를 한꺼번에 토해내는 타르초. 그것들은 낡고 닳아서 저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한 채 무엇인가 끝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의 전생이 있다면 한번 엿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네팔에서 처음 접한 오색 깃발들은 강렬한 기억으로 내 머리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친구와 중국의 구채구 여행을 했는데, 그곳 역시 티베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족 마을이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인들을 서쪽에 있는 장족이라 하여 서장족이라 부르는데, 구채구란 지명도 원래는 구채골로 아홉 개의 골짜기에 장족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비취색 아름다운 물빛과 하얀 설산들. 그리고 얼음바위에서 기묘하게 쏟아지는 폭포의 절경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지만, 나는 긴 룽다와 타르초를 펄럭이며 마을을 이루고 사는 장족 사람들에게 더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그들의 사는 동네를 구석구석 가보고 싶었고 집안도 살펴보고 싶었다.

 

중국의 침공으로 수많은 티베트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이주를 했다. 쫓겨나온 그들은 현지인들도 살 수 없는 히말라야의 고지대에서 돌로 집을 짓고 비참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피폐한 현세는 공덕을 쌓는 시간이며 혹독한 가난 또한 다음 생을 위해 선업을 쌓는 준비단계라고 여긴다. 히말라야의 산자락에서 슬픈 울음소리를 내는 룽다는 그들의 한()과 내세에 대한 염원을 온 몸으로 대신 울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신과 룽다가 없었다면 모진 현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의 질문을 한다. 첫 번째는 어디서 왔는가?”와 그 다음엔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다. 인간은 정말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체투지라는 가장 낮은 태도로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처절한 염원과, 천장으로 독수리에게 죽은 몸을 보시하는 풍습을 지닌 민족. 풍마 룽다는 그들의 염원을 바람에 실어 하늘로 날려 보내는 간절한 도구인지 모른다.

 

오래 전, 우리나라에도 성황당을 만든 고갯마루에 가면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오색 천을 둘렀으며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에도 오색 천을 매달아 놓던 액막이 풍습이 있었다. 요즘도 민속촌에 가면 초가 지붕위에 대나무를 꽃아 오색 천을 매달아 놓는가 하면, 장승이나 오래 된 나무에도 오색 천을 늘어 뜨려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언제 어디에서 유래 된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몽골 지방에 갔을 때도 마을 군데군데 커다란 돌무덤을 쌓아놓고 오색 깃발을 둘러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라와 시대는 다르지만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사람들의 염원은 어쩌면 비슷할지 모른다. TV 화면 속에 클로즈업 되는 룽다와 타르초를 보며 부처님의 자비가 티베트인들에게 한줄기 따뜻한 위안이 되길 바랄 뿐이다.

 

 

                 < 2014년 봄, 그린에세이에 실었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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