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토에세이

우산 이야기

by 아네모네(한향순) 2015. 5. 2.

 

 

 

우산 이야기

 

                                                                                                           한 향 순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오늘은 어떤 우산을 들고 나갈까 망설이다가 노란 해바라기 우산을 들고 나온다.

우중충한 날씨에 마음만이라도 해바라기를 닮고 싶어서다.

아파트를 나서며 호기롭게 우산을 쫙 펼치니 언제 부러졌는지 우산살 하나가 무릎을 꺾고 축 늘어진다.

찌그러진 우산이 마치 내 모습처럼 자존심을 건드려도 무심한척 걷다가 그냥 버스에 오른다.

손수건을 꺼내 젖은 외투를 닦으며 비 오는 차창 너머를 무심히 바라본다.

 

 

 

 

젊은 날에는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했었다. 비가 오면 계절병처럼 가슴이 울렁거리고 어디론가 나가고 싶어졌다.

 막연한 그곳에 가면 나처럼 무작정 뛰쳐나온 사람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기막힌 인연을 만날 것도 같았다.

 다행이 나이가 드니 저절로 그 울렁증도 사라지고 무심한 평온이 찾아들었다.

어릴 때, 비 오는 날이면 늘 우산 때문에 전전긍긍하였다. 누가 우산을 먼저 쓰고 나갈지 눈치를 보아야했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면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우산이 내 차지가 되었다.

행여나 학교에서 놀다가 멀쩡한 우산을 잃어버리고 오는 날이면 엄마한테 무척 혼이 났다.

그만큼 물자가 귀하고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한때 우산을 결혼식 답례품이나 사은품으로 주고받던 시절도 있었다. 우산 선물을 받으면 아까워서

함부로 쓰지 못하고 꽁꽁 숨겨두곤 했다. 그렇게 우산을 소중히 여기던 시절이었다.

요즘에야 많이 흔해졌지만 그때 그런 버릇 때문인지 살이 부러진 우산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하루 종일 들고 다녔다.

 

 

전시회를 보러 나갔다가 교보문고에 들를 일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지하도에 들어서는 순간 빨강 노랑 초록 등 색색이 어우러진 원색의 행렬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우산을 파는 사람이 지하도 모서리에 수십 개의 우산을 펴놓고 진열을 해놓은 것이었다.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자세히 보니 단색의 우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란 하늘에 구름무늬의 우산도 있고, 르누아르의 <시골 무도회>라는

명화속의 남녀도 있었으며 크림트의 <키스>라는 작품도 우산 속에 들어있었다.

내가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사진을 찍자 우산장수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우산을 이리저리 놓아주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보라고 하였다.

장사가 잘 되느냐고 묻자 요즘은 불경기가 되어 우산도 잘 안 팔려요.”라며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어느덧

우산은 우리의 생활필수품이 아닌 패션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우산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 뿐 아니라 햇볕을 막아주는 일도 한다.

어느 여름날 시원한 계곡에서 만난 원색의 우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는데,

아이들이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며 물놀이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우산이 되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비바람을 막아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그런 우산이 되고 싶었다.

 

 

2015년 5월호 <좋은수필>

 

'포토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찔레꽃 향기  (0) 2015.06.15
꽃대궐이 된 복사골  (0) 2015.05.06
언 땅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0) 2015.02.28
추억의 뻥튀기  (0) 2015.02.02
서리꽃의 향연  (0) 2015.01.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