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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터키 여행

석회온천 파묵칼레와 에페소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5. 10.

 

 

버스에서 내려 대리석이 깔린 언덕을 올라가니 어떤 동네가 나왔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묘지가 있는 동네였다.

 

돌로 만든 석관에 뚜껑을 덮은 것도 있고, 높게 기둥을 세워 신분을 표시한 묘지도 있었다. 각기 망자의 신분에 따라 여러 가지 묘비와 석관이 각양각색으로 쓰였던 흔적이 여기저기 남이 있었다.

 

원래 히에라 폴리스 안에는 페르가몬의 전성기 때 만들었던 유명한 병원이 있었는데, 치료율이 굉장히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나 받지 않고 치료 후 완치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만 받았기 때문에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들이 그 근처에서 온천을 하거나 치료를 기다리다가 거의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네크로 폴리스를 지나 히에라 폴리스로 올라가니 정말 성스러운 도시답게 대리석으로 만든 석조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신전들이 여럿 있었는데 아폴로 신전과 원형극장 등은 전형적인 로마시대의 건축물들이었다.

 

 

 

이제는 무덤과 풀포기만 을씨년스럽게 나부끼는 들판에 어디서부터 따라왔는지 들개 서너 마리가 관광객을 졸졸 따라온다.

 

행여 먹을 것이라도 주려나 싶어 아주 친근한 눈빛으로 따라 오는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그저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히에라 폴리스를 지나 언덕을 오르니 하얀 물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곳에 다다른다.

 

그 유명한 석회석 온천 파묵칼레 지역이다. 지금은 수량이 많이 줄어들어 물길을 돌려놓은 바람에 사진에서 본 것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모두 발을 벗고 온천물에 발을 담그었다.

 

칼슘성분이 많은 온천수가 이산화탄소와 만나 석회석이 된 온천은 멀리서 보면 온통 하얀색 뿐이어서 “목화의 성”으로도 불린다.

 

 

길을 가다 보면 이 지역에는 정말 목화밭이 많았는데, 우리는 하얀색을 만날 때면 무심코 “눈처럼 하얗다.” 라는 말을 쓰지만 이곳 사람들은 목화를 많이 보아서인지 “목화처럼 희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물이 흘러내리면서 자연적으로 석회석의 흰 웅덩이가 파여져, 사진에서처럼 파란 물이 고여 있다가 철철 흘러넘칠 때는 정말 장관이었을 듯싶었다.

 

너무 기대를 하고 온 탓일까. 비록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그런대로 색다른 체험을 한 후 버스로 가파른 언덕을 돌아 내려왔다.

 

 

 

 

셀추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에페소 유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BC 14세기 경부터 도시가 형성되었는데, 원래는 그리스인들이 아나톨리아 반도로 건너와 살기 시작했으며 로마시대에 가장 번성하고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고 한다.

 

 

당시에는 항구도시이자 상업 중심지로 발달해 아고라(시장)터와 아래층에는 상점이 있고 윗 층은 주거 형태인 주상복합식의 주택 모형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우선 방대한 유적에 놀랐는데. 그 당시에 이십 만 명 정도가 기거했다니 가히 짐작이 되었다. 유적지에는 그 당시 수로였던 석관들이 딩굴고 많은 기둥들이 서 있으며 아직도 발굴 작업이 계속된다고 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달랑 기둥 한개만 남아 있었는데,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그 신전이 규모가 조금은 상상되었다.

 

헤라클래스의 문을 지나 조금 내려오니 하만(목욕탕)이 있었는데, 그 시대에 난방까지 갖춘 목욕탕은 사치와 허영의 대표적인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 옆에는 좌변식 화장실이 있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긴 의자 같은 곳에 구멍을 줄줄이 뚫어 놓아 담소를 하며 볼일을 보도록 하였다.

 

겨울에는 노예를 미리 앉도록 하여 찬 기운을 덥히도록 하였다니 할일 없이 나태한 귀족들의 생활을 엿보는 듯 하였다.

 

 

 

 

 

아직도 웅장하게 남아 있는 셀수스 도서관 건물은 나중에 주로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도서관 맞은편에 창녀촌이 있었는데 그곳은 지하 통로로 서로 연결이 되어있었다니 인간에게 학업과 욕망은 길 하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창녀촌 입구에는 발 모양과 하트를 그린 안내판이 있었는데 창녀촌의 광고를 위한 최초의 카피라고 할 수 있겠다. 발 모양 그림은 이 발보다 작은 청소년은 입장불가라는 의미로 그렸다는데, 요즘 말하자면 성인 인증서 같은 것이 아닐까한다.

 

 

 

 

그 다음 들른 곳은 대형 원형극장이었는데, 그곳에서 우리 일행 중의 귀염둥이 성모의 노래와 춤을 관람했다.

 

원형극장도 두개나 있었는데 이곳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아무튼 아직도 모자이크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인도와 온통 대리석으로 깔린 넓은 길을 내려오며 영화에서나 보았던 긴 옷을 질질 끌며 사치를 일삼던 로마시대의 귀족들을 떠올렸다.

 

 

 

 

 

자국민들의 휴양지라는 아이발릭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바로 호텔 앞이 바닷가였다.

바람이 많이 불기도 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자세히 둘러보지도 못하고 트로이목마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가이드에게 “허무 유적중의 1위”라는 말을 들은 트로이 목마는 옛날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작고 조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옛 성터들을 돌아보고 목마 안에도 들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히려 이곳이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라는 소설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낸 고고학자의 끈기가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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