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은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가 당쟁으로 인하여 뒤주 속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것을
항상 슬퍼하다가 조부 영조 뒤를 이어 즉위하자 부친의 고혼을 위로키 위해 양주땅 배봉산으로 부터 유해를
수원남쪽 화산으로 천봉하고 수원을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는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성곽을 축성하였다.
전장 6Km에 달하는 성곽과 많은 부속건물은 조선 역사상 서울건설 이후 가장 대규모의 도시건설 사업이었다고 한다.
화성이 완성되고 나서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49세의 한 창 나이에 정조는 병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되고
수원은 정조의 원대한 구상과는 반대로 지방의 소도시로 머물면서 조선 왕조는 몰락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화성의 축조에는 정조 대왕의 선친에 대한 효성 외에 복잡한 당시의 정치적 사정이 얽혀 있었으며
이러한 배경 속에서 조선후기 성곽 건축의 최대 걸작이 탄생된 것입니다. 시설로는 성벽, 성문, 암문, 장대, 돈, 각루,
포루, 봉돈 등이 있다
<비둘기 들이 좋아하는 북 서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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