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새해에 바라는 것들

by 아네모네(한향순) 2025. 6. 18.

 

새해에 바라는 것들

  한 향 순

  해가 바뀌고 새해 새날이 밝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유장한 세월 속에 해마다 맞는 새해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대나 기쁨보다는 걱정과 우려 속에 새해를 맞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속수무책으로 함몰된다. 아무리 소중하고 애틋하던 시간도

흐르는 세월 속에 무디어져서 덤덤해지고, 사랑하던 가족이나 친구를 잃어 못 견딜 것 같은 슬픔도

시간 속에 흘려보내며 살아왔다.

지난 해 말쯤, 나라 안팎으로 커다란 사건 사고가 이어지다보니 올해에는 세파의 소용돌이 속에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미리 걱정이 된다. 더구나 어처구니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비행기 사고로

연말연시는 가족을 잃은 애통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거리 곳곳에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며 국가 애도기간이 되었다.

새해가 시작되며 습관대로 주변 사람들이나 지인들께 서로 새해인사를 주고받으며 덕담을 나누었다.

올해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하세요.”라는 말보다는 건강하시고 무탈한 한해가 되세요.”라는

말을 나도 많이 하게 되었고 또 많이 듣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부자 되세요.” “대박나세요.” 라는 현실적인 세태를 반영하는 덕담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자가 되기보다는 그저 무탈하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바람과 소망이 너나 할 것 없이

가슴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는 나도 악몽 같은 교통사고를 겪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친구를 세 명이나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급발진 사고로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바람에

친구들은 물론 운전자인 나도 척추골절로 큰 부상을 입고 몇 달 동안 병원에 있었다.

오랫동안 몸도 아파서 병원치료를 받았지만 마음고생도 심해서 정신과 치료와 불면증 치료를 받기도 했다.

사고 원인을 아무리 되짚어 봐도 잘 납득이 되지 않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차를 폐차를 할 정도로 컸던 사고규모에 비해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며 감사하던 마음도 잠시,

사고 후유증으로 치료기간이 길어지고 몸이 회복되지 않자 초조감과 짜증으로 감정은 롤러코스트를 타듯 기복을 부렸다.

더구나 나 때문에 다쳐서 고생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무슨 말로도 사죄(謝罪)하기가 어려워서

죄책감에 더욱 마음이 힘들었다.

지난 해 통영에 갔다가 박경리 기념관에 들른 적이 있었다. 박경리 기념관은 통영출신의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을

기념하고 작품 활동에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고향 통영을 소개함으로서 선생님의 문학세계의

이해를 돕고자 2010년 건립되었다고 한다.

기념관 1층에는 선생님이 생전에 고추를 말리시던 모습이 사진으로 크게 붙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생전에 원주문학관에서 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살아계시던

이십 여 년 전 문우들과 원주에 직접 찾아가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우리가 수필을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니 바쁘신 중에도 직접 찾아와서 여러 가지 유익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말은 사람은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자기 분야에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백조가 물위에서 유유자적 떠있는 것 같아도 물 밑에서는 헤엄을 치기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물갈퀴를 움직인다고 비유를 들어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치열하게 글을 쓰라고 말씀해주셨다.

계단을 올라가 기념관 2층에 올라서니 앞마당에 자그마한 선생님의 동상이 서있고

동상 밑에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라는 글귀가 새겨 있었다.

그 글을 읽자 왠지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는데, 그 글은 선생님의 유고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따님이 유고시집을 내셨는데 그 시집에는 나이 듦과 늙어감에 대한 시들이 많았다.

내려놔야 한다는 생각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려고 한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그 시절이 짧고

그때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또는 죽는 것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이 더 어렵다,

늙는다는 것은 쓸쓸한 것이다.” 등의 공감 가는 시가 많았다.

우리도 한 해 한해 나이를 먹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잃고 허둥거릴 때가 많다.

인생의 항로에는 방향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나 화살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찬 풍랑이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으며 중심을 잡고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내면의 힘이 필요할 뿐이다.

새해에는 부디 나라가 안정되어 열심히 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해 덕담처럼

모두가 무탈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2025년 에세이 21 봄호>

 

 

 

 

 

'나의 글모음 > 근래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집에 다시 오니  (20) 2025.06.18
아름다운 인연  (0) 2025.06.18
사소한 일상이 귀하게 느껴질때  (0) 2024.12.12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0) 2024.12.12
마음 다스리기  (1) 2024.09.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