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이 귀하게 느껴질 때
한 향 순
며칠 동안 벼르다가 건물 맨 위층에 있는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는 빨래를 널 수 있는 거치대와 고장 난 가구와 집기들이 여기 저기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게다가 귀퉁이가 부서져서 앉을 수도 없는 의자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운동은커녕 걷는 것조차 여의치 않는 공간에 몇 개의 허름한 화분이 있었는데,
연 녹색으로 고물고물 고개를 내미는 상추와 고추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누군가 정성껏 물을 주며 들여다보았을 식물들은 햇빛을 맘껏 받고 있었다.
나도 누워있는 동안 바깥햇빛이 무척 그리웠다. 예전 같으면 햇빛이 직접 피부에 닿는 것을 두려워해서
썬 크림을 바르거나 모자를 썼겠지만 이날은 전혀 달랐다.
오랜만에 햇빛을 보니 눈이 부셨지만 싱그러운 바깥공기를 쏘이니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해졌다.
올해 봄,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두어 달을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다.
매일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햇빛이라도 보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고 후,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며 진통제와 함께 항 우울제와 수면제 처방이 내려졌고
한 달 정도 열심히 약을 복용을 하였다. 수면제도 습관이 되면 안 된다는 담당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약을 끊고 나니 불면증에 날밤을 새기 일쑤였다.
온갖 잡념과 망상 속에서 괴로운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나면, 햇살이 스며드는 아침에는 손가락도 까딱하기 싫었다.
척추 골절로 두 달을 앉지도 못하고 누워만 지내다가 허리 보조기를 차고 처음 걸음마를 시작하던 날,
처음에는 날아 갈 것 같았다. 보행기를 밀고 화장실 출입을 하는 것만도 어디냐며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누워있는 동안 근육이 모두 빠져버린 다리는 앙상하게 가늘어졌고 중심도 제대로 못 잡고 휘청거렸다.
이러다가 정말 두발로 걸어서 병원을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고 싶은 열망에 시간만 나면 이를 악물고 병원 복도에서 걷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협소한 건물 구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보행기를 밀고 걷는 운동은 한계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멍하니 서서 창밖을 보며 분주하게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을 내다보곤 했다.
병원에서 내려다보이는 골목은 큰 건물 뒤편에 있는 좁은 도로였는데 보행자들도 제법 많이 다니는 골목이었다.
새벽 다섯 시가 넘으면 커다란 쓰레기 수거 차량들이 골목을 차지하는데,
상가건물마다 길에 내어 놓은 음식쓰레기 박스를 차에 싣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운전하는 사람 외에 두 사람이 트럭 꽁무니에 매달렸다가 잽싸게 내려 커다란 박스를 트럭에 실어야 하는데,
정지와 출발 신호가 맞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을 만큼 보는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쓰레기 수거 차량이 지나간 골목에는 상가에 물건을 납품하러 온 차량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커다란 박스들을 내려서 현장에 옮기기 위해서는 시간을 지체하기에 번쩍 번쩍 경고등을 켠 차량들이
여기저기에서 길을 막고 있다. 물건을 내려놓은 차들이 떠나가고 차량통행이 뜸해진 골목에는
매일 같은 시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지나가고, 여기 저기 일터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진다.
모두 각자의 삶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분주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더러는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힘들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불평을 터트리기도 하지만,
누구나 평범한 일상을 잃어보지 않고서는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을 때는 간병사의 도움 없이 내손으로 밥을 먹고
내발로 화장실 출입을 할 수 있기를 얼마나 염원 했던가.
악몽 같던 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골절되었던 허리뼈가 조금씩 회복되자 보조기를 차고서
겨우 앉아서 밥을 먹고 화장실 출입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급한 욕망은 내발로 걸어 나가 맘껏 햇볕을 쪼이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이도 있는데다 한번 망가진 몸은 쉽게 원상복구가 되는 게 아니었다.
누가 병원 옥상에 가면 햇빛도 볼 수 있고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도 얼른 엄두가 나질 않아 며칠을 망설이다가 큰 용기를 내어 옥상에 올라와 본 것이다.
비록 어수선하고 협소한 공간이지만 햇빛이 고맙고 하루하루 커가는 식물들을 보고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옥상에서 햇볕을 받으며 걷는 연습도 하고 가벼운 체조도 하며
퇴원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 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 갈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허나 퇴원한지 벌써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고 후유증으로 평범한 일상생활을 힘들어 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당신의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간절히 소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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