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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by 아네모네(한향순) 2024. 12. 12.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한 향 순

 

요양병원의 아침은 새벽 5시부터 몹시 소란하고 분주하다.

처음에는 이른 새벽 어디선가 들려오는 쿵 쿵하는 소리의 정체를 몰라서 몹시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복용하는 약은 많은데 삼키는 기능이 약해진 어르신들의 약을 가루로 빻느라고

병실마다 부산스럽게 아침을 알리는 알람이 된 것이다.

불행과 사고는 늘 예고 없이 뒤통수를 치는 법. 올해 봄, 운전을 하다가

심하게 교통사고를 당해 대학병원에 가서 일주일쯤 치료를 받았다.

그 후, 긴 시간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집 근처의 재활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척추 골절로 꼼짝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던 두 달 반 동안 요양병원의 하루는 슬로우비디오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통증은 물론 모든 것이 생소한 환경 속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간병사의 도움을 받자니,

자괴감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며 감사 기도와 함께 마음을 돌리는 것도 잠깐,

우울한 감정의 변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트를 타듯 변덕을 부렸다.

요양병원에서는 간병치료를 받을 수 있기에 거의 거동을 못하는 중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병실에도 한분의 간병사와 4명의 환자가 입원 중이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병원 생활을 오래 한 분들이었다.

내 옆 침대에 계신 분은 피부도 하얗고 아주 인자하게 생긴 할머니로 몇 년 전부터 파킨슨병으로

병원에 들어오셨다는데, 지금은 거의 거동을 못하고 인지기능도 많이 떨어지신 상태이다.

그러나 식욕은 좋아서 따님이 며칠마다 해오는 반찬과 간식 들을 잘 잡수시는데

오직 낙이라고는 드시는 것 외에는 없으셨다.

어르신들의 상태는 한 치 앞을 모른다고 멀쩡하던 분이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기침을 하면

병실은 초 긴장상태가 된다. 밤새 간호선생님들이 들락거리며 수액이나 산소마스크를 씌우기도 한다.

환자들이 식사를 하다가 기침이나 사래가 들려도 큰 걱정이다. 음식물이 잘못하여 기도로 들어가면

기도가 막혀 숨을 못 쉬기 때문에 간병보호사들이 제일 신경을 쓰는 것도 식사 시간이다.

그나마 식사를 못하는 분은 콧줄을 끼고 유동식을 공급받는데 먹는 즐거움마저 빼앗기고 나면

정말 산목숨이 아니었다. 우리 병실에 계시던 한 분은 처음부터 말도 안하고 콧줄을 끼고 계셨는데

안타까워하는 가족들의 표정으로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을 하곤 했다.

그 뒤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5층 중환자 실로 내려가고 그 뒤로는 어찌 되셨는지 소식을 모르겠다.

어느 때는 한밤중에 병원이 술렁이며 긴장감이 도는 때가 더러 있다.

수선스런 발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면

밤사이에 어느 병실에서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다.

같은 층에 10개 정도의 병실이 있는데 오래 있다 보면 어느 병실에 어떤 환자가 있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 수 있다.

그 날도 아침이 되어 간병사의 소식통으로 우리 옆 병실에 있던 한 여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 또래의 70대 여인이었는데 무슨 병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얼마 전,

하나 있는 아들마저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며 인사차 들렸다고 한다.

늘 책을 읽으며 말 수가 없던 분이었는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였는지 평소에도 끼고 있던

산소마스크를 자주 빼버렸다고 한다.

요양병원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기에 안타까운 그 여인의 사연도 곧 기억 속에 묻혀버릴 것이다.

요양병원의 저녁은 조금 이른 편이다. 새벽에 5시쯤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에

보통 오후 여덟시 정도가 되면 소등을 하고 취침을 하는 편이다.

어느 날 저녁, 잠을 자려고 소등을 한 병실 문이 활짝 열리며 덩치가 큰 남자가 들어서더니 누구를 찾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 그런 사람 없으니 나가 달라고 했지만 그는 마치 숨겨놓은 보물이라도 찾듯이

침대 밑까지 샅샅이 뒤지는 것이었다.

나중에 간호선생님과 병원 관계자들에 의해서 끌려 나가긴 했지만

할머니들이 모두 놀라서 잠을 설치고 여러 후유증을 남겼다.

이튿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남자병실에 있는 치매환자였는데 나이도 그리 많지 않고

몸집도 건장하여 언뜻 보면 환자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별로 말썽도 부리지 않고 얌전한 환자였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돌발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치매환자들에게는 석양증후군이라는 이름만 낭만적인 증상이 있는데,

석양증후군은 치매 환자가 해 질 무렵이 되면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불안정한 모습과 함께

의심증이나 우울해지는 증상이다. 또한 석양증후군은 환자의 생활에 변화가 생긴 후에 자주 발생하며,

현실이 자신을 고통에 처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서 더욱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한다.

전에는 아름다운 석양과 멋진 일몰 촬영지를 다니며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러나 요양병원에서 인생의 석양에 다다른 여러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고

어떻게 늙을 것인가나의 노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읽는 분의 편의를 위해 문단을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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