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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겨울나무의 지혜

by 아네모네(한향순) 2024. 3. 8.

 

겨울나무의 지혜

한 향 순

  올 겨울 날씨는 마치 널뛰기를 하는 것 같았다. 12월인데도 계절에 맞지 않게 따뜻한 날들이 지속되더니

갑자기 무서운 한파가 몰아치며 몸을 웅크리게 하였다.

친구들 모임에서 수목원을 찾은 날은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였다.

숲속의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나목들이 겨울의 애상을 말해주는 듯 빈 가지를 벌리고 우리를 맞고 있었다.

봄이나 가을에는 사람들로 붐비던 수목원에도 겨울이 되어서인지 산책객들은 없고,

나무에 겨우살이를 준비해주느라 분주하게 일을 하는 관리자들만 드문드문 보였다.

그분들은 나무에 짚을 감기도 하고 가지치기를 해주며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계셨다.

우리도 옛날에는 월동준비를 하려고 겨우내 먹을 김장을 하고 땔감을 준비하기 위해 장작이나 연탄을 미리 쌓아놓았다.

또한 야생의 동물들은 추운겨울을 나기 위해 두둑하게 살을 찌워 동면을 하거나

최대한 움직임을 적게 하여 몸에 지방을 비축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무의 월동준비는 잎과 잎자루 사이에 있는 떨켜라는 특수한 조직을 만드는 일로 시작한다.

떨켜는 냉해를 막기 위해 뿌리에서 올라온 물이나 잎에서 만들어진 양분이 오고 가는 것을 차단한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조직을 정상가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물이 없으니 광합성이 안 되고 광합성을 하던 엽록소는 파괴된다.

엽록소가 있던 자리에 그동안 숨어있던 색소들을 채우면서 여러 색깔이 밖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이 나무에 단풍이 드는 현상이다. 은행나무처럼 노란색을 띠는 나무는 카르티노이드 성분이 있고,

단풍나무처럼 빨갛게 물드는 나무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아서라고 한다.

떨켜는 겨울이 되면 잎을 떨어뜨려 낙엽을 만든다. 낙엽에 있는 안토시아닌 성분에는 살충 효과가 있어

뿌리 주변에서 해충을 막는 일까지 한다. 죽으면서도 한때 자신을 키운 나무에 이로움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낙엽은 나무의 밑거름이 되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나무가 싹을 틔우고 소생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올해는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12월 중순까지도 단풍이 들지 않은 곳도 있고,

미처 준비도 안 된 초록 은행잎들이 한꺼번에 떨어져서 무참하게 땅에 떨어진 곳도 있었다.

가을에 기온이 낮아지면서 잎 안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서서히 잎을 줄기에서

분리하는 떨켜라는 세포층이 생기면서 낙엽이 되어야 했는데, 두 작용이 날씨 때문에 들쭉날쭉하여

올해는 엽록소가 채 파괴되기도 전에 떨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변덕스런 날씨 때문인지 수목원에는 아직 불그레한 단풍이 나무 끝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저 잎들도 진즉 미련을 버리고 나무에게서 떨어져 낙엽이 되었어야 할 것을 어쩌다가

시기를 놓쳐 아직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지 안쓰럽게 보인다.

마치 걱정과 미련을 못 버리고 자식 곁에서 서성이는 우리 세대의 부모들을 보는 것 같아서이다.

TV에서 보는 동물의 세계는 냉혹하고도 치밀하다. 맹수들은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홀로 설수 있도록 먹이사냥을 가르치고 스스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위험상황으로 내몰기도 한다.

또한 독수리는 새끼와의 이별연습을 지독하게 한다.

새끼가 어미 그늘에서 먹이만 받아먹고 날개 짓을 배우지 않자 어린 새끼를 서슴없이 절벽 아래로 밀어낸다.

새끼는 엉겁결에 날갯짓을 할 수밖에 없다. 아직 힘이 없는 새끼독수리는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하고,

어미독수리는 새끼가 땅에 닿기 직전 자신의 날개로 받아 절벽 위로 올라간다.

그렇게 훈련의 시간을 견뎌낸 어린독수리는 태풍 속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강력한 하늘의 제왕이 된다.

요즘 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은 심란하고 걱정이 많다고 했다.

올해 막내 손자까지 모두 대학에 가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도 없고,

또한 외국의 생활 풍습대로 성인이 된 아이들이 자립을 하겠다고 할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자식들이 크면 부모의 품속을 떠나 자립을 해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지만 유독 한국 부모들은

떨켜의 시간을 연습하지 않고 자식과의 이별을 두려워한다.

나도 그랬다. 오래 전 아들이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무조건 반대 할 수는 없었지만 아들이 그날 이후 외국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공부를 마치면 귀국하여 우리 곁에 머물 줄 알았는데, 아들은 타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삼십년 째 살고 있다.

그때는 자식과의 떨켜의 시간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혼란과 섭섭함에 한동안 힘들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곁에 있는 것만이 효도는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튼실한 둥지를 만들어 새 가족을 만들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 또한

봄을 기다리는 나무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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