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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정성 가득한 선물

by 아네모네(한향순) 2023. 7. 12.

 

 

정성 가득한 선물

                                                                                                                                           한 향 순

    눈부시게 환한 꽃들이 피어나고 연녹색 이파리들이 꽃보다 더 예쁘게 고물거리는 봄도 지나고 벌써 여름이다.

아름다운 계절 4,5월을 올해는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아주 심한 감기로 혹독하게 고생을 하다 보니 마치 봄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3년 동안 코로나로 무장하던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마스크를 벗고 나니 마음이 해이해졌을까

사월 중순쯤 감기가 걸렸다. 처음에는 동네병원에서 약을 지어다 먹고 며칠 쉬다보면 낫겠지 싶어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낫기는커녕 증세가 점점 심해지며 기침까지 하게 되었다.

평소에 기관지가 약해 기침감기가 오래 가는 편이어서 그때부터는 겁이 나서

외출이나 운동도 자제하고 집에서 꼼짝 못하고 근신을 하였다.

며칠 치료를 하면 나으려니 싶던 기침은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순례하다시피 하여도

별로 차도가 없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그런 와중에 가까웠던 40년 지기 친구가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나니 마음이 허허롭고

사는 것이 허탈해져서 기운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저절로 마음은 조급해지고 기침은 잠을 잘 수 없도록 심해졌다.

목이 부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오니 전화 통화하기도 힘들고 외부와의 소통은 톡이나 문자 메시지 정도였다.

하도 기침이 오래 가고 심해서 다른 병은 아닐까 싶어 종합병원을 가려고해도

두어 달은 기다려야 하고 예약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차선책으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더니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시간 촉박을 요하는 응급상황은 아니라고

약만 며칠 지어주고 돌려보냈다. 실의와 초조함에 빠져있는데,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동생이

커다란 통에 아직 식지도 않은 뜨끈뜨끈한 차를 보내왔다.

하루 종일 불 앞에서 서성이면서 기침에 좋다는 배와 도라지, 대추는 물론 한약재까지 넣고 다린 정성스런 보약이었다.

모든 인사치레도 쉽게 현금으로 주고받는 요즘 같은 세태에 종일 불앞에서 신경을 쓰며 차를 만들었을

그녀의 정성에 감동하여 어떤 위로보다 고맙게 느껴졌다.

설사 그 차를 마시고 감기가 금방 낫지 않더라도 예전에 아플 때,

친정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처럼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젊을 시절, 감기 몸살이 나면 남편이 그때는 귀하던 파인애플통조림이나 복숭아통조림을 사다주곤 했었다.

입맛이 없어 요기를 못하니 그것이라도 먹고 기운을 차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후, 남편이 2년 동안 해외에 나가 있을 때 내가 아픈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아이들을 혼자 건사하느라 힘도 들었고 걱정도 많던 시기였다.

어느 날,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모아둔 용돈을 털어 과일통조림을 사들고 왔다.

신통하게도 제 아빠가 하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요즘이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음식이 귀한 줄도 모르지만 시장도 멀고 교통사정도 힘들었던 40년 전에는 정말 감동적인 일이었다.

차를 끓여다 준 동생과의 인연은 35년 전, 서울에서 살 때 운동을 하며 알게 되었다.

나이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힘든 인생을 살아 온 삶의 연륜이나 지혜는 나이하고는 상관없었다.

그때는 젊은 시절로 철이 없을 나이에도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삶에 도전하는

그녀를 보며 마음이 끌렸는지 모른다. 아무튼 이십여 년 전,

서울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경기도의 변두리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우리의 인연은 길게 이어졌다.

나중에는 남편들과도 자주 어울려서 주말마다 산행을 하거나 여행을 하다 보니 어지간한 가족이나 친지보다 가까워졌다.

같은 동네에 살던 다른 동생 부부와 함께 세 집 가족이 젊은 시절에 만나 이십 년이 넘게 가까이하다 보니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어지간한 형제들보다 서로의 집안 사정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들도 십년 전 까지는 자식들을 위해 애쓰고 전전 긍긍하던 삶이었다면

이제는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노후의 여유를 즐길 나이지만

이제는 건강이 허락하질 않아 즐겨하던 등산도 못하고 여행도 그리 여의치가 않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도 세월과 함께 자연스레 늙어갔다. 세 사람 중,

또 다른 아우는 우리 중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데도 작년에 애석하게도 남편을 잃고 혼자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인생은 한치 앞을 모르는 항해와 같다더니 누구도 제일 젊은 그 남편이 먼저 가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십여 년 전, 우리 세집 부부가 큰 맘 먹고 동유럽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고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우리가 추진하여 여행을 강행을 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모두 젊었기에 우리는 무모하리만치 겁도 없고 씩씩하였다.

지금도 세 사람이 만나면 여행하던 때의 좌충우돌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추억하며 박장대소를 금치 못한다.

그렇게 젊을 때 만나 지금까지 따뜻한 인연을 이어오면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앞으로 우리에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이 쌓여 남은 삶도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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