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추억의 길 위에서

by 아네모네(한향순) 2023. 4. 14.

                                                                               2023년 봄 호 <에세이 문학>

 

추억의 길 위에서

 

                                                                                                                                     한 향 순

 

무심코 TV를 켜자 눈이 군데군데 쌓인 커다란 설산이 다가왔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봉우리 사이로 가늘게 이어진 길을 따라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길은 산중턱을 가로지르며 마치 차마고도처럼 아슬아슬하게 절벽 끝으로 이어져있어

보는 사람마저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일요일 내가 즐겨보는 영상앨범 이라는 프로이다. 처음에는 이곳이 어디인줄도 모르고

그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따라갔다.

차츰 눈에 익은 지형들이 들어오고 상황설명을 하는 성우의 목소리로

그곳이 바로 미국과 캐나다 접경지역에 있는 글레이셔국립공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글레이셔국립공원을 다녀온 것은 7년 전인 2016년 여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옐로우스톤국립공원을 보고 이곳까지 들리게 된 것은 일종의 모험이기도 했다.

미국 서부 위쪽에 자리한 글레이셔국립공원은 대륙의 왕관이라고 불리는 빙하국립공원이다.

이 공원은 캐나다 지역에도 걸쳐있는데캐나다 지역은 ‘워터론 국립공원이라 불린다.

이곳은 미국과 캐나다 두 나라에 의해 동시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국제평화공원이 되었다.

이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도로인 고잉투더 썬 로드를 따라 웅장하고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도로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로건패스에 자리한 방문자 센터가 보통 트레킹의 시작점이다.

로건패스는 해발 2026m로 이 길의 중간지점이자 아주 넓은 주차장과 방문자 센터가 있는 곳이다.

이곳을 관통하는 고잉투더 썬 로드는 이름처럼 태양을 향해 오르는 길이다.

로건패스에 오르면 제일 먼저 캐나다와 미국의 국기를 나란히 꼽아 놓은 것이 눈에 띈다.

그 뒤로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웅장한 바위산이 보이는데, 그것은 해발 2,670Km클레멘트라는 산으로

300만 년 전 빙하기에 형성된 빙하로 한여름인데도 하얀 눈이 그대로 있었다.

글레이셔국립공원에는 억겁의 세월동안 지질구조의 변화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산봉우리와 26개의 빙하,

그리고 빙하에서 흘러내린 130여 개의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지구의 온난화 영향으로 알라스카의 빙하도 녹고 있지만

이곳의 빙하도 2030년 경 에는 모두 없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로건 패스에서 갈 수 있는 트래킹 명소로는 하이라인 트레일이 있다. 이 길은 특별히 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거리가 왕복 24km로 조금 긴 편이다. 길의 초입부터 오솔길을 따라 들어서면, 한쪽으로 거대한 암벽이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길은 이내 암벽을 따라 놓인 아찔한 벼랑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10대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하이라인 트레일은 바위산 모서리를 깎아지른 듯 좁은 절벽 길로 대부분 이어져 있다.

길을 걷다보면 한쪽에는 웅장한 설산이 보이고 발아래는 여러 가지 야생화가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정말 환상적인 코스였다.

두어 시간이나 걸었을까. 우리는 귀한 야생화를 촬영하느라 걷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고 있는데

갑자기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은 비가와도 거의 개의치 않고 길을 걷는데,

우리 팀은 사진작가들이라 습기에 약한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쉽지만 트래킹을 포기 하고 출발점인 로건패스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 코스는 히든 레이크를 보러가는 트래킹 코스인데 며칠 전 그리즐리라는 야생 곰이 발견되어

사람을 해칠까봐 출입을 막고 있었다. 다음 날 운이 좋게도 히든 레이크 오버룩이 오픈을 하였기에

우리 일행은 눈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산을 올라갔다.

로건패스에는 노란 야생화가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지천으로 피었는데 한쪽으로는 눈이 쌓여서

눈길을 한참 걸어 언덕을 오르자, 숨어있던 히든 레이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설산의 멋진 반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관이 펼쳐졌다.

칠년 전만 해도 무거운 카메라 배낭을 메고 힘든 트레킹을 할 수 있을 만큼 체력도 있었고

무릎상태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면서 한해가 다르게 무릎상태가 악화되었고

결국 작년에 무릎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나서 힘든 재활과정을 거치며 포기하지 않은 것은

트레킹을 다시 할 수 있으리라는 간절한 희망 때문이었다.

오늘도 추운 날씨 때문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뻣뻣해지는 무릎 때문에 헬스장에 온 것이다.

그리고 트레드밀에서 걸으면서 습관적으로 TV를 켰는데 반갑게도 글레이셔국립공원에서 트레킹 하는

사람들을 본 것이다. 빙하가 다 녹기 전인 2030년 까지 저곳에 다시 가 볼 수가 있을까.

어쩌면 한해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처럼 사람은 더 빠르게 늙어가기에 쉽게 기대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 생각지도 못한 TV속에서 추억어린 길을 따라가듯이 그런 희망이라도 품으며

힘든 오늘을 버티며 살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나의 글모음 > 근래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여정  (0) 2023.12.29
정성 가득한 선물  (0) 2023.07.12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0) 2023.04.14
친구를 위하여  (0) 2023.03.22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0) 2023.03.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