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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by 아네모네(한향순) 2023. 3. 22.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한 향 순

 

약속이 있어 외출 준비를 서두르는데, 무엇인가 코 주위에 서늘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갖다 대니 영락없이 선홍색 피가 묻어났다.

에구 또 코피가 나네.” 얼른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얼굴을 닦은 후, 티슈를 돌돌 말아 코 안에 집어넣었다.

휴지는 금방 붉은 색으로 물들고 코피는 진정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보통 코피가 나면 휴지로 코를 막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오 분정도 있으면 그치곤 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쉽게 그치지 않고 애를 먹였다.

내가 어제 무리를 했나?’ 하고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다.

코로나로 그동안 만나지 못하던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 시내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서너 시간 수다를 떨다가 온 일 밖에 없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밤에 원고청탁을 받고

글을 써보려고 컴퓨터에 앉아 생각을 모으느라 잘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이다.

그렇다고 글을 쓴 것도 아니고 괜히 잡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원고는 정작 시작하지도 못했다.

생각의 샛길로 빠져서 시간만 허비하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었으니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런데 몸은 잠을 못 잔 것을 어떻게 알고 오늘 경고를 보낸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가끔 코피가 나곤 했다. 아주 힘든 산행을 하거나 일정이 빡센 일로

잠을 못자고 나면 영락없이 나도 모르게 코피가 나곤 했다.

그때마다 몇 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곧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느 병원에선가 코 안의 실핏줄이 약하니 혈관을 지지는 방법이 있다고 했으나 별로 권하지는 않았다.

코피가 안 나고 만약 다른 혈관이 터지게 되면 더 위험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코피가 나는 것은 몸이 고단하다는 신호이자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젊었을 때 해오던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상황에도 더러 코피가 나곤 했다.

미처 내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지 못하고 나이를 의식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였다.

칠십 고개를 넘으며 두 번의 수술을 하고 나서는 현저하게 체력이 떨어졌는데도

그 정도의 수술쯤은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도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도 인정하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코피가 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한계를 알고 적당히 멈추라는 몸의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르고 체력도 조절을 못하다 보니 요즘 매스컴에

많이 오르내리는 문구 자기조절능력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신체적인 것은 물론 심리적인 조절까지 잘 할 수만 있다면

누구를 원망하거나 분노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은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산물이라고 한다.

더구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자기능력조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사회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기조절능력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충동적인 감정이나 유혹, 불안과 갈등 같은 주변의 위협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쉽게 빠지지 않고

대처 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하면 힘든 상황을 더 힘들게 인식하고 불행한 상황에 매몰되어

감정적 동요와 충동에 쉽게 흔들리게 된다.

부정적 감정은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시야를 좁게 만들어 원인을 분석하는 능력도 떨어지게 한다.

모든 것을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면서 더 악화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 생각이나 충동을 인정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것에 발목이 붙잡히게 되고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면 더욱 그 생각에 집착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제 나도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남은 노년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든다. 점점 약해지고 노쇠해 가는 체력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한 자기조절능력을 키워 세상과 어울리면서 외롭고 우울하지 않게 살려면 부단한 단련을 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 그 누구도 혼자서는 지혜로울 수 없다.”고 했다. 파편이 된 지식과 쓸모없는 정보가 난무하는 요즘,

내면의 자기중심을 세우고 우울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싶어 오늘도 여기저기 세상을 기웃거린다.

 

2023년 봄호 <계간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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