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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새로운 시선

by 아네모네(한향순) 2022. 9. 20.

 

 

새로운 시선

 

                                                                                                                                               한 향 순

 

외국에 살고 있는 며느리와 작은 손자가 삼년 만에 집에 다니러왔다.

코로나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자 아이의 방학을 이용하여 아들과 큰 손자는 집에 두고, 모자(母子)가 큰 결행을 한 것이다.

우선 성장기에 있는 둘째 손자가 그동안 몰라보리만큼 커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게 사진도 보내고 영상통화도 가끔 했지만 실제로 보니

아이는 삼년 동안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의젓한 청소년이 되어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학입시 준비로 시간이 금쪽같은 아이를 데리고 어찌 여행을 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며느리와 손자는 내 조바심과는 달리 그저 여유롭기만 했다.

늘 만나면 하던 행사로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며칠간 여행을 하며 그간의 소식이며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같은 공간에서 며칠 동안 같이 먹고 같이 지내다 보면 가족끼리 친밀감도 생기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 아이들의 생활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작은손자가 사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쓰던 구형 DSLR 사진기를 준적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그동안 카메라 기술을 익히고

사진도 많이 찍어보고 나름대로 사진공부를 하고 있었는가 보았다.

더구나 며느리가 큰손자 때와는 달리 대학입시 준비에 그리 초조해하지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취미를 지지해 주는 듯하였다.

둘째이니 조금 느슨해 진 것도 같아 부담 없이 아이들과 같이 사진도 찍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여행을 즐겼다.

속초로 가는 길에 우리는 우선 남이섬에 들렸다. 봄과 가을에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지만

초여름도 괜찮을 듯싶어 배를 타고 들어갔다. 남이섬은 아이들 어렸을 때 가끔 소풍을 오던 곳인데,

그동안 해외관광객이 몰려 통 발길을 끊었다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가끔 찾던 곳이다.

무엇보다 아름드리로 자란 메타세콰이어 숲길이 명품이라 황금색으로 물드는 멋진 숲을 보고 싶어

가을과 눈 내리는 겨울에 많이 오던 곳이다.

요즘은 갈색의 나무둥치와 초록의 나뭇잎들이 어울려 한여름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손자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기분이 좋아보였다.

더구나 코로나 덕분인지 그 많던 해외관광객도 없고 섬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우리부부는 아이들을 모델로 삼아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손자까지 더불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아이가 가벼운 스마트폰이 아닌

카메라를 꺼내들고 진지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은 신기하고도 기특하였다.

한 때는 자식들이 우리의 취미를 같이 좋아해주고 공유해 주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무거운 장비들도 점점 부담스럽고 그동안 이래저래 모은 카메라 장비들이나 기기들을

자식들이 물려받아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고 우리 또한 그런 기대를 포기하고 지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어린 손자가 사진촬영을 좋아하고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너무도 신기하였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2019년 우리는 호주에 있는 아들네에 갔다가 온 가족이 모여 뉴질랜드 일주 여행을 하였다.

뉴질랜드는 청정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숲과 경관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나라이다

게다가 인구가 적어 어딜 가도 복잡하지 않고 한적한 여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이하고 아름다운 영화 촬영지도 많고 사진 촬영할 곳도 많았다.

그때 작은 손자는 철부지 어린이였는데, 굳이 내가 들고 있는 큰 카메라를 찍어보고 싶어 했다.

카메라를 잘못 만지거나 떨어트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간단한 사용법을 알려주었더니

제법 몇 시간 찍어보며 신기해하곤 했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제 나름대로 여기저기 찾아보며 카메라 사용법을 익히고 어느새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강원도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와서 여러 기기 중에 그동안 아끼던 쏘니 카메라를 아이에게 주었다.

광각렌즈부터 망원렌즈까지 다양한 렌즈를 커버할 수 있는 줌렌즈가 장착되어 있어 렌즈를 바꾸지 않아도

손쉽게 피사체에 접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카메라였다. 아이는 뛸 듯이 좋아하며 신기 해 하였다.

사진은 매체를 통한 재현을 벗어나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로 발전했다.

이제는 누구나 한 장의 사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가 사진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은 할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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