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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삶은 새로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by 아네모네(한향순) 2022. 3. 26.

 

 

삶은 새로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한 향 순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이 이년 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모두 지친 가운데 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고, 새해에는 부디 병균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예전처럼 좁혀질 수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살아오면서 이런 공포감 속에서 불안을 느꼈을 때가 언제였을까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니 극심한 공포감은 느껴보지 못했는데 여덟 살 쯤 이었어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가다가 그만 손을 놓쳐서 길을 잃었지요.

반나절 후에야 다른 동네에서 꾀죄죄한 나를 찾았다는데 그때의 공포와 두려움은

지금까지도 강하게 기억 속에 박혀있습니다.

그 후로는 부모님 밑에서 무탈하게 성장하여 이 나이까지 평범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비로소 세상이 무서워졌지요.

부모가 되고 나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두렵고 겁나는 일이고,

남을 미워하고 험한 말만 해도 그 영향이 아이들에게 미칠 것 같았습니다.

내 소중한 아이들을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했고 세상의 험악한 사고가 우리에게만은 비켜가길 빌었지요.

굴곡진 삶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크고 작은 아픔과 절망도 더러 있었으나,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지탱하게 해준 가족과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글쓰기 덕분인지도 모르겠네요.

 

더구나 수필은 자신을 객관화시켜 직시하며 쓰는 글이기에 포장이나 엄살은 통하지 않았고

진솔한 내면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글을 쓰면서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고

성찰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내면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나와 조우하고 친해질 수 있었지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생활이 안정되자 숨어있던 욕망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며 나를 부추기더군요.

이런 저런 운동을 배우면서 내 기량과 체력을 저울질 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접해보기도 했었지요.

또한 자연의 매력에 빠져 산을 사랑하게 되었고, 산을 찾던 발걸음이 넓어져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가끔은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싶어 놀라기도 하였지만.

호기심과 열정으로 내닫는 내 발걸음을 말리지 않고 호응을 해준 건 남편의 깊은 아량이었지요.

 

여행을 좋아하다가 만난 취미가 사진이었지요.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고

나중에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점점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지금은 내 노후를 심심치 않게 해줄 재미있는 취미가 되었지요.

이제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약해지고 의욕도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좋아하는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은 나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내 욕심 때문인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나이를 겁내며 미리 주눅이 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할 수 없을 때가 오면 자연스레 하나씩 포기하며 살아가야 할 테니까요.

오래 전에 문단의 어느 선배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좋아하던 것을 하니 씩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젊을 때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는데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 그 말이 새삼 실감나게 다가오는군요.

선배님은 아프면서 좋아하던 것 대부분을 포기했고, 포기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자식자랑이나 손주자랑은 쏙 들어가고 여기가 불편하고, 저기가 아프다고 병 자랑을 합니다.

또한 무슨 약이 어디에 좋다더라.” 라는 건강 정보가 넘쳐나는 것을 보니

모든 관심사는 다 때가 있고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겠지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는 나이든 나를 상상하기도 싫었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지요.

그러나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생각도 많이 바뀌고 마음도 많이 비워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끊임없이 세상과 부딪히고 혼자 외로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요. 나이 들면서 마음관리 몸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살다보면

언제가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소풍처럼 살다 가는 이승에서의 이별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겠지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노년의 소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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