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월정사
한 향 순
올해 겨울은 유난히 몸도 마음도 추운 것 같다. 겨울이 오면서부터 기승을 부리던 전염병은
가족과 친지들의 안부를 챙겨주던 연말연시도 없애버리더니 이젠 명절까지도 사람을 절해고도처럼
고립시키려나보다. 게다가 몇 년 만의 한파까지 겹쳐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마음이 추우니 올 겨울이 더 춥게 느껴져, 모든 의욕도 줄어들고 하루하루가 답답했다.
오히려 많아진 시간을 고마워하기는커녕 나무늘보처럼 게을러지기 일쑤였다.
그런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떨어버리려고 선택한 방법이 겨울바다를 보러 가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답답하고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때는 바다를 찾아 격렬하게 부딪히는
파도를 보며 응어리진 마음을 쏟아내곤 한다.
그런데 신년 초에는 코로나로 이런 바닷가마저 통제를 했다.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길을 떠난 것이 하필 올 겨울 들어 제일 추운 날이었다.
바다를 찾아가는 길에 월정사에 들리게 된 것은 삼년 전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그길로 이끌어서였다.
삼년 전 이맘때쯤 나는 지인의 권유로 월정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불교신도도 아닌 내가 산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것은 어떤 일을 결정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심을 하다가 조용하게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였다.
삼년 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원 백 명이 넘는 어느 단체의 장을 맡아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이도 적지 않은 터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달갑지 않았고, 단체를 이끌어야하는
책임감에 시달리기 싫어 계속 거절을 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총회 날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점점 옥죄어 오는 권유와 설득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에 쌓이게 되었다. 그때 지인이 권해서 오게 된 곳이 월정사였다.
우선 아무것도 없는 텅 빈방에 짐을 놓고 월정사 옆에 있는 전나무 숲길로 나왔다.
오대산 자락에 있는 월정사는 보통 서울보다는 기온이 4~5도는 낮은 편이어서
해가 기울자 살을 에는 추위가 몰려왔다. 그래도 가끔 사람들이 보이고 더러는 혼자 걷는 스님들도 있었다.
하늘을 가리듯이 위로 뻗은 전나무들은 보통 수령이 백년 정도이고 그중에는
어른 몇 명이 손을 잡아야 닿을 수 있는 몇 백 년 된 나무도 있다.
“명상은 고통과 무지로부터 벗어 날 수 있도록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 것이고,
그 지혜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계속 진행되어야만 유지 될 수 있지요.
사람은 깨어 있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자연과도 상생관계가 됩니다.”라는 오대산 명상마을
스님에게 들은 말을 음미하며 혼자 전나무 숲을 하염없이 걸었다.
산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집에 돌아와 큰 용기를 내어 일을 맡았고
어느덧 무사히 삼년이 지나 임기가 끝나가고 있다. 그동안 힘든 일도 많았고
속상한 일도 있었지만, 모든 일에는 득과 실이 따르지 않던가.
삼년동안 열심히 일한만큼 보람도 있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 배우고 깨우치면서
좀 더 생생하게 인생 공부를 한 기간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종종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할 때가 있다.
우선 나이가 드니 번거롭고 머리 아픈 일은 피하고 싶고 그저 안이한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지금 내 앞에는 어떤 길이 놓여있는지 그 길은 어디로 이어지고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선택은 더 힘들어 진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망설임과 두려움 때문에 피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은 것 같아
삼년 전, 새로운 길을 선택했고 이제 후회는 없다.
오늘 다시 찾은 전나무 숲길은 하얀 눈이 쌓여 있고 길 옆 계곡은 꽁꽁 얼어있는데,
날씨가 추운 탓인지 인적마저 드물었다. 월정사 금강교에서 일주문까지는 곧게 뻗은 길이 약 1Km정도이고
‘월정대가람’이라고 쓴 일주문을 돌아서 반대편으로 돌아 나오는 길은 900m인데 평평해서
장애인들도 쉽게 오를 수 있는 무장애 길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금강교를 지나 마음달이 아름다운 절 월정사에 이르니 천년고찰의 위엄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넒은 절 마당에 우뚝 서있는 팔각구층석탑과 다소곳한 석조보살좌상이 삼년 전처럼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언젠가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에서 지혜가 필요할 때 다시 월정사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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