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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팽나무에 부는 바람

by 아네모네(한향순) 2021. 3. 15.

 

팽나무에 부는 바람

 

                                                                                                                          한 향 순

 

나무는 비스듬히 누워서 모자를 쓴 것처럼 보였다. 뺨에 와 닿는 바람이 여인의 손길처럼

한결 부드러워진걸 보니 바람은 벌써 봄을 품고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제주를 오가며 사진촬영을 하는데, 제주 특유의 돌과 바다도 좋아하지만

요즘은 유독 제주의 팽나무에 마음이 끌린다.

바람이 강한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뿌리를 단단히 박고 중심을 잡아야 했으니

나무는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까. 그래서인지 이곳의 팽나무는 유독 가지가 바람 부는 방향으로 뻗어있으며,

나뭇가지는 마치 매듭을 묶어놓은 것처럼 울퉁불퉁 굵은 마디가 생겼다.

 

제주의 팽나무는 방언으로 폭낭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곳을 가도 마을 어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짠물과 갯바람을 버틸 수 있는 만큼 강한 나무이기도 하다.

내륙지방에서도 자라기는 하지만 주로 남쪽 바닷가에 있으며,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만큼이나 오래 산다고 한다.

드물게는 수령이 천 년을 넘긴 나무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제주의 당산나무는 주로 팽나무가 많다.

내륙에서 나고 자란 나는 궁궐이나 옛날 문화재가 있는 곳에 가면 아름드리 거목들을

가끔 촬영했으나 팽나무보다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를 많이 보았다.

지난겨울에는 창덕궁에 갔다가 잎을 떨군 거대한 회화나무를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오랫동안 그 앞에서 서성거렸다. 하늘을 향해 빈 가지를 온통 풀어헤치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사백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면서 궁궐을 내려다 본 나무는 궁궐의 역사는 물론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흥망성쇠를 모두 굽어보았을 것이다.

애타는 사연이나 억울한 죽음도 보았을 테고, 권력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도 본 나무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고작 백년도 못사는 인간들이 죽고 죽이며 헐뜯는 모습을 보고 나무는 내심 가소로웠을 것이다.

그런 나무의 속마음을 표현해 보고 싶어서 보호수로 지정된 창덕궁 회화나무를 오랫동안 촬영했다.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대부분 마을 입구 당산나무 밑에서 뛰놀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모진 풍상을 헤치고 살아남은 늙은 나무들은 마을의 전설과

선조들의 유훈으로 나무 자체가 신성하게 여겨지곤 했다.

 

 

 

제주의 폭낭도 마을 공동체와 함께 해 온 마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태풍과 눈보라 등

모진 고난을 이겨내며 마을을 지켜 온 큰 나무이기에 마을의 신목(神木)으로 여겨지곤 했다.

주거환경이 척박했던 제주 사람들은 마을의 악한 기운을 막거나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당산나무에 제를 지냈다. 질병과 재앙을 멀리하고 농사가 잘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해달라고 비는

동제(洞祭)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에게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원하는 제의이다.

애월읍 상가리에 있는 천년이나 된 팽나무를 비롯하여 와흘리 본향당 팽나무나,

성읍마을의 팽나무들은 제주의 상징적인 명목(名木)들이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가지를 뻗은 팽나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가장 제주와

어울리는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팽나무는 바람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결코 생명력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상징되며 제주 사람들의 강인한 기질을 닮았다.

이런 노목들이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베어지고 있고 제주의 농촌 풍경이 자주 변해가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비애가 몰려오며 마음이 씁쓸해진다.

사계절의 팽나무 중에도 유독 잎이 나오기 전, 쓸쓸한 빈 가지를 보여주는 나목(裸木)의 팽나무를 좋아한다.

다른 나무보다 느지감치 움트는 팽나무를 보고 싶어 지난해 힘든 여건에도 제주를 찾았다.

중산간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가끔 눈을 뒤집어 쓴 한라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쓸쓸한 언덕에 어떤 의식을 치르듯이 홀로 의연하게 서 있는 팽나무가 보인다.

나무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한다.

폭낭이라 불리는 팽나무가 중앙에서 정자나무 역할을 했고 이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팽나무 아래에 돌로 쌓은 대()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마을회관이 들어서기 전,

주로 공회당 역할을 했던 댓돌이다.

 

저 팽나무는 그 오랜 세월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참혹한 마을의 역사를 굽어보았을 것이다.

대대로 자리 잡고 살던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마을이 불타 버려서 흔적마저 없어졌지만,

나무는 끝내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 잃어버린 마을을 지키고 있다.

4,3사건 이후 제주 사람들이 쓰리고 아픈 상처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함구했던 오랜 시간만큼,

팽나무도 아무 말 못하고 인고의 세월을 살았을 것이다.

이제 대지는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이 돌고 팽나무에도 물이 오른다.

겨우내 숨어있던 야생화들은 언 땅을 비집고 나와 팽나무 주위에서 얼굴을 내밀고 세상만물과 화해를 시작한다.

홀로 쓸쓸히 서있는 팽나무에도 움이 트고 연녹색 새잎이 돋으면

그날의 아픈 영혼들이 바람이 되어 팽나무 곁을 떠돌며 위안이 되어 줄 것이다.

 

 

                                                            2021년 <에세이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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