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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근래의 수필

당연한 일

by 아네모네(한향순) 2024. 3. 18.

 

 

 

당연한 일

  한 향 순

  수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연히 시선이 아래쪽으로 가다보니 운전대에 놓인 손이 허전했다.

약지에 항상 나의 분신처럼 끼워져 있던 반지가 안 보인다. 언제 어디서 빠져나갔는지

그동안 어떻게 잃어버린 것을 전혀 몰랐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 봐도 그럴 일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힘이 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와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갈 경우의 수를 아무리 상상해 봐도 다른 날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IMF를 극복하려고 금 모으기를 할 때도 그 반지만은 없애고 싶지 않아 남겨둔 것이었다.

하도 오래 끼다보니 손가락에 살은 빠지고 손가락 매듭은 굵어져서 반지를 끼고 빼기도 힘들어졌다.

오년 전쯤, ‘회전근개파열이라는 병명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힘들게 수술 날짜를 받아 입원수속을 마치고

수술을 기다리는데 수술 전 MRI를 찍으려면 몸에 있는 금속은 물론 반지도 빼라고 했다.

전혀 반지 생각을 못하고 그대로 입원을 한 자신이 한심했지만 그 후의 일이 더 큰일이었다.

너무 오래 반지를 끼다보니 손의 매듭이 굵어졌는지 아무리해도 반지를 뺄 수가 없었다.

손가락에 기름이나 비누를 묻혀 미끄럽게 한 다음 아무리 잡아 뽑아도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검사를 못하면 어렵게 잡아놓은 수술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 가야했다.

간호선생님은 물론 담당 의사선생님도 난감한 표정으로 걱정만 할뿐 애꿎은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남편은 이리저리 헤맨 끝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어떻게 작은 톱을 구했는지

그때부터 반지를 끊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손을 다치지 않게 하며 톱질을 하려니 손을 내밀고 있는 나나 톱질을 하는 사람의 이마에서는 긴장을 하여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두 시간 여 톱질을 한 결과 드디어 반지가 끊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잘 마치고 집에 와서 반지를 보니 톱질을 하여 마구 휘어지고 끊어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반지 때문에 하도 고생을 하여 정나미가 떨어졌을 텐데도 분신 같았던 그것을 버릴 수 없어

사이즈를 조금 늘리고 수리를 하여 다시 끼게 되었다. 워낙 오래 간직했고 사연도 많던 것이라

막상 반지를 잃어버리자 맥이 풀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우선 수영장으로 연락을 해보니 분실물이 하나 들어오기는 했는데 그것이 맞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실낱같은 기대감을 안고 정신없이 수영장으로 가니 조그만 비닐봉지에 주운 사람의 연락처가 쓰여 있고

거기 내 반지가 들어 있었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눈물이 나올 뻔하였다.

일단 전화를 걸어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만나자고 하니 새벽운동을 하고 직장에 나가는 사람이라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에요.”라며 극구 사양을 하였다.

아무리 당연한 일이라지만 요즘 세태에 기대하기 힘든 일이지 않은가.

그녀에게 어떻게 라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데 사양을 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딸에게 의논을 하였다.

요즘은 전화번호만 알면 얼마든지 선물을 할 수 있다고 하여 그녀에게 작은 선물이지만

케이크와 커피 쿠폰을 보내주었다. 그것으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며칠 전 추운 한파에 집을 나가 길을 잃은 90대 할아버지를 찾아준 버스 기사도

자기는 당연히 할일을 했다며 굳이 선행을 드러내지 않았다.

할아버지 가족들이 추운 날씨에 얼마나 애타고 찾아다니고 걱정했으리라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짐작했기에 그 기사님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우리 사회에는 가끔 정신병자 같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보이지 않게 당연한 일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사고가 혹시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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