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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어머니의 다변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23.

어머니의 다변(多辯)

 

 

  며칠 전,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날씨가 추워지자 혼자 계신 집이 더 썰렁할 것 같아 따뜻한 우리 아파트에서 지내시라고 모셔 온 것이다. 원래 성격이 깔끔하셔서 어지간하면 딸네 집에서도 주무시고 가시는 성격이 아니지만, 요번에는 어머니도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오신 것 같았다. 그 동안 어머니를 모셔온 남동생 부부는 요즘 생업 때문에 가게에 나가 있고, 그나마 하나 데리고 있던 손자도 군대에 가버리고 나니 어머니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 집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이라도 되면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시는 날부터 조바심을 내기 시작하셨다. 어머니가 매일 드시는 여러 가지 약들을 꼼꼼히 챙겨 오셨는데도 그 중에 빠진 것이 있다며 불안해하시더니, 결국에는 며칠 못 가서 당신 집으로 가신다고 성화를 하셨다. 한창 기승을 부리는 추위라도 한풀 수그러지면 가시라고 가까스로 어머니를 달래놓고 나니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가 며칠 와 계신 동안, 나는 어머니의 변한 모습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하기는 연세가 드시니 해가 갈수록 쇠약해지는 신체적인 변화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격도 예전하고 많이 바뀌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거의 하루 종일 말을 하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한쪽 귀의 청력이 좋지 않아 남이 하는 얘기도 잘 못 알아듣는 편이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끊임없이 하시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 동안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저렇게 말을 많이 하실까”라고 이해를 하다가도 어느 때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마치 배가 고프던 아이가 한꺼번에 폭식을 하듯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쏟아놓고 계셨다.

어떤 때는 한 얘기를 하고 또 하고, 몇 번씩 듣느라고 정말 인내심이 필요했다. 어쩌면 나는 까맣게 잊어버린 옛날 일들도 어머니는 용케 기억해 내어 말씀하시곤 했다.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어머니 주위에는 넋두리라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여 둘째를 낳던 26년 전에 돌아가시고 그 동안 사 남매의 자식들은 모두 성장하여 분가를 했다. 그러나 모두 자기 가족 꾸리고 살기에 급급하여 누구하나 어머니께 살뜰한 관심을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어머니의 몸이 건강했을 때는 이 집 저 집 다니시며 궂은일을 도와주시곤 했는데, 이제 연세가 들고 거동이 불편해지시고는 그 일도 못하시니 더욱 외로우셨으리라.

 

  맏이인 내가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키울 때, 어머니는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내가 사는 동네 근처로 이사를 하신 적도 있다. 친정어머니가 가까이 사시는 덕에 나는 아이들을 맡기고 마음 놓고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외출에서 돌아와 보면 어머니가 다녀가신 흔적 때문에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허둥지둥 나가느라 어질러진 집안은 윤기가 나게 깨끗해져 있고 정성껏 차려져 있는 밥상을 대하게 될 때였다.

 

  어머니께 맏딸인 나는 친구처럼 아들처럼 미더운 존재였나 보다. 더구나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집안의 모든 일이나 동생들의 일은 나하고 의논하셨다. 그러던 내가 먼 동네로 이사를 오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가다보니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집안의 대소사에나 참석하고 가끔 안부 전화나 삐쭉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많이 섭섭하셨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혼자서도 우리 집을 찾아오셨을 테지만, 이제는 기력이 딸리시어 누가 모셔오기 전에는 다니실 수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언젠가 미국에 다녀왔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일찌감치 자식을 분가시키고 홀로 사는 미국의 노인들은 정말 불쌍하더라는 것이다. 사회 복지가 잘되어 있어 우리나라 노인들에 비해 경제적인 걱정은 없겠지만, 바쁜 자식과 손자들은 일 년에 서너 번 밖에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외롭겠느냐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벤치에 나와 있는 노인들이 측은해서 말을 받아주다 보면 몇 시간이고 끝도 없이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대가족 제도 속에서 손자의 재롱을 보며 사는 우리나라 노인들은 그나마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말 할 상대가 없는 처절한 외로움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하다못해 다툴 상대라도 있는 노인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점점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 세대도 곧 겪게 될 노년의 외로움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에게 닥치지 않은 어려움은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나 보다. 막연히는 알고 있었지만 나도 어머니가 오시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곤하게 잠드신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많이 늙으신 모습에 연민과 자책이 끓어오른다. 그러나 날이 새면 나는 또 까맣게 잊어버리고 무심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애절한 마음과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점의 차이일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부모가 떠나시고 나면 회한(悔恨)에 떨며 목을 놓고 우는가 보다.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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