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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두려움에 대하여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24.

두려움에 대하여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지 연일 삼십 도가 웃도는 날씨다. 더위를 잊을 생각으로 텔레비전을 켜니 대부분 공포 영화나 납량 극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가 사람이 공포를 느끼거나 두려움을 갖게 되면 체온이 올라가서 상대적으로 서늘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정말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감정 중에서 왜 두려움이 인간의 중추신경을 강하게 자극시켜 체온을 상승시키는 것인지 궁금증이 들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친구였으며 헤밍웨이에 관한 책을 썼던 「카스티요 푸체」라는 사람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헤밍웨이의 숨겨진 내면을 공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겁쟁이라고 했다. 헤밍웨이는 누구보다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했으며 도전과 모험에 남달리 집착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가면이라고 했다.

 

  ‘노인과 바다’ 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그는 작품 속의 모험을 실제로 시도하므로 써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고 했다고 한다. 산부인과 의사였으나 자살한 그의 아버지를 비겁자라고 비난하던 헤밍웨이도 결국 62세 되던 해 사냥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 불을 환히 밝히지 않고서는 잠들지 못했다는 헤밍웨이의 기사를 읽으며 나는 왠지 연민으로 가슴이 찡해 왔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두려움을 느낀 것은 여섯 살 때쯤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길을 잃어 버렸을 때 일 것이다. 할머니는 지방 도시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계셨는데 집에 무엇을 가지러 들리셨다가 나를 데리고 가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손님이 오고 물건을 팔다 보니 내가 없어졌다고 했다. 나는 어린눈에 처음 보는 신기한 것을 따라 시장 통을 돌다가 보니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디를 어떻게 헤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희미하게 생각나는 것은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 신작로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는 생각밖에 없다. 분명히 골목을 돌아서면 방앗간이 보이고 술집이 있는 동네 길목이 나올 것 같은데 아무리 걸어도 낯익은 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의 막막하고 무서운 느낌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가끔씩 나를 엄습하곤 한다. 나중에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전 가족이 동원돼서 해가 기운 초저녁쯤 엉뚱하게도 다른 동네에서 울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어린 시절 늘 어머니 치마꼬리를 붙잡고 다니는 소심하고 겁 많은 아이였다. 성격도 지독하게 내성적이어서 늘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이었다. 내 생각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말을 안 하다 보니 학교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던 것 같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그런 내 성격이 너무도 싫었다. 당당하지 못하고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심약한 내 자신이 싫어서 심한 열등감에 오래 시달렸다.

 

  그러다가 탈출구를 찾은 것이 소설이었다. 책은 나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때는 어떤 것이 좋고 나쁜 것인 줄도 모르고 제대로 소화시킬 줄도 모른 채 무조건 읽었다. 책 속의 주인공은 내가 못하는 것들을, 내가 원하던 것들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책의 내용이나 주인공은 잊어버리더라도 내가 읽은 책의 제목과 저자만은 꼭 적어 놓아서 도표를 그리듯이 암기하곤 했다. 그때 나의 어린 가슴을 감동시키던 우상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나와 비슷한 겁쟁이 이었다니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요즘 어린 나이로 세계의 골프 무대에서 자랑스러운 경기를 보여준 어느 어린 선수의 성장과 훈련 과정이 매스컴을 통해서 자주 보도된다. 오늘이 있기까지의 본인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딸을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가르침도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고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을 키워 주기 위해 어린 딸에게 공동 묘지에 가서 밤을 새우는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훈련도 중요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내가 어릴 때는 몸이 약해서였는지 가위에 자주 눌리거나 나쁜 꿈을 많이 꾸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시며 기가 허해서 큰일이라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인지 집안에 제사가 있거나 차례를 지내는 일이 있으면 자고 있는 나를 깨워서라도 제사 음식을 먹이곤 하셨다. “자 이걸 먹어야 겁이 없어진단다.” 하시며 밥알이 섞인 숭냉이나 쓴 술잔을 입에 대어 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정성 때문인지 나는 차츰 철이 들고 자라면서 올바른 자아를 찾아갔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 두려움을 스스로 얼마만큼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두려움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진지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오히려 전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열심히 글을 써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하루였다.

 

                                                                                                                                                              199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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