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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꽃은 피고 또 지고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24.

꽃은 피고 또 지고

 

  그동안 세상은 온통 꽃 천지로 물들어 있었다. 연녹색과 진초록의 나뭇잎 사이로 연분홍 산 벚꽃과 하얀 조팝나무, 그리고 수줍은 새댁의 볼연지 같은 복사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온 산야를 물들이고 있었다. 아직은 사월인데 다른 해보다 빨리 온 더위 탓인지 봄꽃들은 마치 경쟁을 하듯 앞 다투어 피어나고, 성질 급한 목련이나 벚나무는 실바람에도 꽃비를 뿌리고 있었다.

 

  외국에서 태어난 돌잡이 손자가 할머니와 가족들을 만나러 한국에 온지 한 달여, 오늘은 타국 땅에 있는 저희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기에 배웅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어린 것이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오느라 힘에 겨웠는지 오자마자 감기 몸살을 호되게 앓더니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귀여운 손을 흔들며 먼 땅으로 떠나갔다.

 

  작년 이맘때, 나에게 첫손자가 생겼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도 처음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아들의 처가에서 산후조리와 아이를 돌보아줄 사람이 갔다고 하니, 나는 아이를 상면하러 갈 명분도 잃어버리고 그만 백일을 넘기고 말았다. 그 후로 몇 번이나 갈 기회를 엿보았으나. 이런저런 이유에 발목이 잡혀 훌쩍 일 년이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부지런히 아기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부쳐주곤 했지만 내가 정작 할머니가 되었다는 자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할머니가 된 것을 축하하네!”라고 말하면 아직은 받아들일 수 없는 할머니란 호칭에 은근히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것은 손자를 얻었다는 기쁨보다, 늙는다는 것에 항거하는 오만이었는지 모른다.

 

  드디어 돌잔치를 하기위해 며느리와 손자가 들어오고, 잔치준비에 분주했던 며칠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더구나 먼 거리를 오느라 힘이 들었는지 아이가 많이 아팠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낯가림을 하다 보니 나와 눈을 맞추며 정을 주고받을 사이가 없었다.

 

  그러나 아기가 서서히 낯을 익히고 몸이 회복되고 나자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 갔다. 호기심 많고 장난이 심했던 제 아빠를 닮아서인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아이는 말썽꾸러기 용사였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옹알이와 몸짓으로 의사표시를 하며 순식간에 일을 저지르곤 했다.

 

  아이와 종일 함께 지내며 나는 아이의 표정만 보아도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라는 말도 자주 쓰게 되자 어느 사이 나의 자연스런 호칭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손자가 집에 오고 나서 우리 부부는 나이를 먹고 늙는다는 것이 반드시 쓸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뿐, 지금도 외롭고 쓸쓸하게 혼자 누워계실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게 내리누른다. 어머니는 지난겨울부터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그간 앓으시던 지병은 많으셨지만, 그래도 정신력이나 의지가 강하신 편이어서 어머니가 쉽게 무너지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손자를 키우며 혼자 지내셨는데, 그 손자를 군대에 보내고 많이 외로워 하셨다. 물론 가까운 거리에 자식들과 며느리가 살고 있었지만, 생업에 묶여 한집에 기거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애써 조석을 준비하는 일도 없어졌고, 혼자 드시는 식사는 당연히 부실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을 할 상대가 없는 외로움에 많이 지치셨을 것이다.

 

  그런대도 자식들은 모두 제 살기에 급급하여 그런 어머니의 외로움에 미처 마음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그것은 어머니의 커다란 마음의 병이 되었고, 이제는 기력마저 떨어져 자리에 눕게 된 것이다. 나도 어쩌다 삐쭉 어머니를 찾아뵙고 보약을 지어드리거나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자식 된 도리를 대신하곤 하였다.

 

  요즘 며느리가 유난스러울 만큼 제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혼자 누워계실 어머니를 많이 생각했다. 나도 내 자식들을 저렇게 끔찍하게 키웠을 테고, 어머니도 우리들을 그렇게 키우셨을 것이다. 아무리 내리 사랑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지만 제대로 된 사람의 도리는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 중에서 가장 멋진 사진 한 장이 있는데, 그것은 정말 어머니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게 특이한 사진이었다. 요즘같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 동산에서 어머니는 마치 취기가 오른 사람처럼 온몸을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서 한손을 호방하게 허리에 짚고 몽롱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장 행복했던 어느 봄날의 모습일 것이다.

 

  만지면 터질 것 같은 연녹색 새순은 어쩌면 깨물고 싶은 손자의 모습일 것 같고, 누렇게 퇴색이 되어 떨어지는 목련의 꽃잎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기쁨과 축복을 안고 나에게로 온 손자도, 지푸라기처럼 쇠잔해진 모습으로 앓고 계시는 어머니도 나에게는 소중한 가족이며 혈육이다.

 

  꽃이 피고 또 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세상의 순리일 것이다. 순리를 거역할 수는 없겠지만 어머니의 말년이 조금은 외롭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20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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