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를 마치고
열흘 동안 북새통을 치며 공사를 하던 집수리가 드디어 끝났다.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거실바닥에 거뭇거뭇한 얼룩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마치 암세포가 퍼지듯 검은 반점이 되어 점점 크게 번져갔다. 아마도 거실 바닥 밑에서 습기가 생겨서 썩고 있는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그러나 그 습기가 어떻게 생겨서 썩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집수리를 하기로 하고 공사를 맡은 곳에서 사람이 왔다, 그는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더니 목욕탕에서 방수 처리가 덜 되어 물이 새는 것 같으니 그곳을 뜯어내고 다시 바르면 될 것이라고 아주 쉽게 말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막상 공사가 시작되어 여기저기를 뜯어보니 물이 새는 곳은 엉뚱하게도 온수 파이프였다. 온수 파이프에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 몇 년 동안 새어나와도 모를 만큼 조금씩 누수가 된 물이 온통 집 안을 습기 차게 만들고 썩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온수 파이프는 마치 제과점에 있는 파이처럼 삭아 있었다.
처음 공사를 의뢰한 기술자와 상의를 하니 집 안에 있는 냉, 온수 파이프를 모두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단하리라고 생각했던 집수리가 느닷없이 큰 공사를 벌이게 된 것이다. 짐을 딴 곳으로 옮길 만한 곳도 없는 좁은 아파트 공간에서 수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심란한 것인지 짐작하기 때문에 맥이 쑥 빠졌다.
그러나 미룰 수도 없는 일이어서 마음을 다져먹고 일을 시작하였다. 첫날은 인부 두어 명이 나와서 망치로 시멘트 바닥을 깨어내고 파이프가 있는 자리를 찾는 일이었다. ‘쾅쾅’하고 망치질을 할 때마다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해서 가슴까지 오그라드는 듯하였다. 관리실에 허락을 얻고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했지만 집 안에 환자분이 계시거나 아기가 자고 있는 집은 없는지 걱정이 되었다.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지쳐 있다가 망치소리가 그쳐서 보니 인부들은 보이지 않고 거실 바닥의 낡은 파이프들이 얼기설기 모습을 드러냈다. 온수 파이프는 삭아서 두꺼운 켜를 만든 것이 그동안 어떻게 물이 통과했는지도 모를 만큼 부식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어다보다가 사람의 혈관도 나이가 먹고 병이 들면 이렇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혈관도 조금씩 노폐물이 쌓여가다가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누수가 되거나 터져버리는 것이리라. 다행이 수술로 고장 난 곳을 고치기도 하지만 만약 수도관처럼 새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인간의 수명도 훨씬 길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은 여러 명의 기술자들이 동 파이프를 가지고 와서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산소 용접기를 가지고 와서 파란 불꽃을 내며 파이프를 연결하는 일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인 것 같았다. 파이프 공사를 하고 난 이튿날은 시멘트와 모래를 가져다가 파낸 부분을 메우는 미장일을 하였다. 시멘트가 마르도록 며칠을 기다린 후 도배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도배를 하고 맨 마지막으로 바닥재를 깔면서 모든 집수리가 끝났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옮겨 놓았던 가구와 물건들을 깨끗이 닦아서 제자리로 옮겨놓는 일은 전부 나의 몫이었다.
요즘은 모든 직업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서인지 집수리를 하다 보니 사람마다 하는 일이 전부 달랐다. 망치질을 하는 사람이나 남은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도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공사가 지연되고 다음 일의 진행이 안 되었다. 이렇게 한낱 집수리를 하는 데도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니 큰 건물을 짓거나 물건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체의 어려움은 얼마나 클까라는 짐작이 되었다.
며칠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 수리가 끝난 집 안은 밝고 깨끗해졌다. 집수리를 하는 통에 십 년 묵은 먼지까지 털어내고 대청소를 하고나니 모처럼 집 안에 윤기가 나고 새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큰일을 치르고 난 듯한 후련함에 차를 끓여서 천천히 마시며 집 안을 둘러본다. 어느덧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십삼 년이 되었다.
비록 수리를 하여서 집 안은 깨끗해졌지만 오래된 가구며 낡은 집기들이 세월의 켜가 되어 지나온 시간들을 말해주는 듯하다. 문득 집수리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이나 마음도 가끔 수리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은 몸의 건강에는 관심이 많아서 미리 검사나 진단을 받고 관리를 잘하지만 마음의 건강관리에는 소홀한 것 같다.
어릴 때는 순수하던 마음도 점점 나이를 먹어 아집이나 욕심의 때가 끼면 막힌 수도관처럼 썩어갈지 모른다.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오늘은 집수리를 하듯이 오랜 묵상을 통하여 마음 구석구석에 낀 먼지를 털어내야겠다. 그리고 이기나 집착으로 병들어 있는 마음이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조용히 생각해본다.
199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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