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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상처와 용서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8. 4.

상처와 용서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늘 보던 나무들이고 자주 걷던 익숙한 길인데도, 오늘 따라 아주 새롭고 경이롭기까지 한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동안 몰라보게 나뭇잎이 푸르게 변하였고, 그간 숨어있던 꽃들도 봉우리를 터트리고 누군가 보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월의 만물은 새롭게 변신하여 약동하고 있었다.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융통성 없는 내 좁은 마음뿐이었다. 오늘 따라 새들의 지저귐이 수다스러울 정도로 청아하다. 무슨 말을 전하려고 저리도 쉬지 않고 울어대는 것일까. 저 새들은 지난겨울 그리도 혹독한 추위와 폭설 중에 어디 숨어 지내다가 목숨을 부지하였을까. 혹한의 겨울을 넘기고 맞는 봄이어서 더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몰두하며 숲길을 걷는데 까치 한 마리가 길섶에 앉아있다. 인기척 소리에도 달아날 생각도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쪼아 먹는다. 아마도 새끼에게 물어다 줄 먹이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길던 겨울이 지나 추위가 물러나고 봄이 오면서 난 심하게 봄을 타고 있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현란하게 피어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마치 나 혼자 추운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아 몹시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일만큼 괴로운 일이 있을까. 섭섭함이 지나쳐 배신감이 들었고, 그런 마음 때문에 정신적인 소모가 아무리 커도 마음을 바꾸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런 마음의 불균형은 곧 육체의 건강에도 해를 끼치며 여기저기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오래 나를 괴롭히던 목 디스크가 재발하여 어깨 근육이 굳어지며 목이 뻣뻣해졌다. 그러더니 통증이 등으로 해서 허리까지 내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갱년기 증후군으로 여기저기 아프던 몸이, 옳다 싶었는지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육체의 주인인 마음이 평정을 잃고 비틀거리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가까운 친구가 내 사정을 듣더니, 척추 교정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바람에 척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단순히 척추를 교정시키는 일뿐 아니라 기공과 활법(活法)을 이용해서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뼈를 바로 잡아주는 치료법인데, 치료과정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 힘든 치료를 받기 위해 매일 서울까지 다니느라고 봄의 향내도 맡지 못하며 아름다운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애쓴 만큼 건강이 차도를 보이지 않자, 나는 만사가 귀찮고 아무 의욕도 나지 않는 우울 증세까지 나타나곤 했다.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고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얼마 전에 어느 신부님이 쓴 “상처와 용서“라는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상처는 친밀함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상처에서 나오는 고통의 독소 때문에 모두 괴로워한다고 했다.

 

  작가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용서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행위가 아니며 구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했다. 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오월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수혜(受惠)의 달이다. 사랑과 감사가 넘쳐나고 꽃과 숲은 꿀과 향기로 가득하다. 이런 좋은 계절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 어둠과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만은 없다.

 

  하기는 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구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한때는 자신이 미워 스스로를 방관하고 학대하곤 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상처를 방치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우선 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노력을 해야겠다. 그래야만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나의 몸도 평안을 찾을 것이다.

 

                                                                                                                                                        200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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