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는 것들
말없는 몸짓의 언어. 춤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맏이로 태어난 나는 무척이나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 처음 손님이 찾아오면 인사하기가 부끄러워 변소로 숨어들 만큼 수줍음이 많던 아이였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리만큼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초등학교 3 학년 올라가서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반 아이들 중 몇 명을 호명하시더니 방과 후에 잠깐 남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증을 참으며 선생님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선생님이 오시더니 얼마 후에 있을 학교 예술제에 우리가 무용을 하기로 뽑혔으니 다음 날부터 연습을 하라는 것이었다.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인가. 무용은 선배 언니들이 하는 것을 몰래 숨죽이며 본 일이나 있을까 내가 해볼 염두는 꿈에도 없었는데..... 그러나 지엄하신 선생님의 명령에도 으쓱하고 들뜬 마음은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연습에 들어가야 되니 무용복을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황당한 일은 그 무용복이라는 것이 몸에 꼭 붙는 타이즈에 폭이 넓은 짧은 스커트였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무용복을 맞출만한 여유도 없거니와, 그런 망측한 것을 어떻게 입느냐고 완강히 거절을 하셨다. 나는 다시 입도 떼어보지 못한 체 무용에 대한 꿈을 접고 말았다. 그리고 날마다 친구들이 연습하는 장면을 몰래 숨어서 보곤 했다. 나중에 커서 생각해도 그때 왜 떼를 써서라도 부모님을 조르지 못했을까 하고 의아심이 든다.
그리고 나는 까마득히 춤이란 것을 잊고 살았다. 혹시 주위에 무용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도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자, 그렇지 않아도 넉넉한 몸집에 살이 붙어 무슨 운동이건 해야만 했다. 남편을 따라 테니스장에 가서 그것을 배워보려고 무진 애를 썼건만 팔목 부상만 입고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또 동네 수영장에 가서 수없이 물을 먹어 가며 수영을 배워보려고 하다가 중이염 때문에 그것도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도대체 운동이라고는 기본적인 달리기도 못하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항상 체육시간만 되면 걱정이 앞서 두통이 왔고 운동회나 체력단련 시간에도 매번 꼴지 만 했으니 어쩌면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그러나 무슨 운동이건 좋아하고 나의 실체를 모르는 남편은 무슨 운동이든지 하라고 날마다 채근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나날이 몸무게는 늘고 걱정은 태산 같았다.
그 즈음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찾아왔다. 가까운 곳에 에어로빅 운동을 가르치는 곳이 생겼는데 같이 다녀볼 생각이 없느냐는 거였다. 20 년 전만 해도 에어로빅이 많이 보급되기 전이어서 젊은 아낙네들이 바람나기 쉬운 춤 교습소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춤보다는 운동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물어보니 그거라도 해보라며 흔쾌히 허락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 등록을 하고 운동복을 입은 후 그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듯 몸에 꼭 조이는 운동복을 입고 날렵한 동작으로 자신만만하게 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뚱뚱한 몸매에 마음 따로 몸 따로 도무지 내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 없었다. 나는 혼자 얼굴이 벌겋도록 애를 쓰며 맨 뒤에서 뒤뚱거렸다.
에어로빅 운동이란 원래 서양에서 들어온 유산소 운동이지만, 그 시절에 동작은 운동이라기보다는 신나는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멋지게 춤을 추는 선생님의 율동을 보며 나는 그만 넋이 빠졌다. 어쩌면 사람의 몸짓에 저렇게 수많은 표정이 있을까 하고 새삼 놀랐었다. 더구나 앞모습도 아닌 뒷모습을 보면서..... 적당히 볼륨도 있고, 근육으로 단련된 몸매에 정확하고 날렵한 동작이 그만 나를 황홀경 속에 몰아넣고 말았다. 더구나 그런 선생은 처녀도 아닌 나와 비슷한 연령의 주부라는 것에 더욱 놀랐다.
그날 밤 나는 흥분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잊고 있었던 춤에 대한 열망이 한꺼번에 깨어나는 듯 했다. “나도 꼭 저렇게 따라서 해 봐야지”라는 무모한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부터 앞에서 뛰는 선생님을 열심히 흉내 내기 시작했다. 남들이 팔을 올릴 때 한 박자가 늦어 발을 올리면서도 끝까지 따라 하였다. 몸살을 앓고 코피가 터져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에어로빅을 배우려고 무척 애를 썼다.
남편도 처음에는 며칠이나 다니다가 그만 두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은근히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하도 열심히 하니까 모른 체 하던 선생님도 관심을 보이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더 신이 나고 자신감이 생겼다. 나중에는 내 자신에 도취되어 정말 내가 진작부터 춤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동작에도 힘과 자신이 붙게 되고 에어로빅의 묘미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지만, 나는 그 뒤로 이십 년 동안 거르지 않고 에어로빅 운동을 해왔다. 슬플 때는 슬픔을 잊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고, 기쁠 때는 더 신이 나서 운동을 했다. 춤을 추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잊고 내가 그 속에 빠져들었다. 땀을 흠씬 흘리고 난 뒤 샤워를 끝내고 나오면 몸과 마음은 날아갈 듯이 상쾌하고 가벼웠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또 건전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신체적인 건강도 유지된다고 생각된다.
오늘도 오십이 넘은 나는 젊은이들 틈에 끼어 열심히 에어로빅 운동을 한다. 몸이 후끈 달아오르며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몰아(沒我)의 세계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난다.
200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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