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문조의 죽음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23.

문조의 죽음

 

  “엄마! 어쩌면 잔인하게 그럴 수가 있어요?” 외출을 했다 허둥지둥 들어오니 딸애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원망과 비난조로 말했다. “왜 무슨 일이 있었니?” 나는 심상치 않은 아이들의 기색에 놀라 정색을 하고 물었더니 “베란다에 나가보세요.” 하고는 제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하며 베란다로 나가보니 문조 두 마리가 모두 먹이통에 고개를 쳐 박고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 세상에 이럴 수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니?”

 

  나는 너무도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망연자실하였다. 처음에는 왜 멀쩡하던 새가 죽었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먹이통도 깨끗하고 물통도 바짝 말라있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감지되었다. 더불어 아이들의 행동도 이해가 되었다. 맥이 탁 풀리면서 기가 막혔다. “내가 미쳤나. 새를 굶겨 죽이다니. 도대체 무엇에 정신을 잃고 며칠 동안 새 모이 주는 것도 잊었단 말인가?”

 

  근래에 와서 방금 들고 있던 지갑을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아이들을 동원해서 찾게 한다거나 고추장 뜨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빨래만 걷어온다 던지 하는 일련의 건망증이 있기는 했지만 친구들도 겪는 경험이려니 하고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내 무관심으로 굶겨 죽였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내 자신이 한심하고 혐오스러워지기까지 하였다.

 

  작년 가을 “얘 아파트 생활이 단조로울 텐데 새 한번 키워 보지 않을래?” 하며 친구가 새를 주겠다고 했을 때 사실 별로 달갑지가 않았었다. 뒤치다꺼리도 귀찮아서이지만 몇 번 동물을 키우다가 실패한 경험을 떠올리고는 “잘 키울 자신이 없는데....” 하면서 거절했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랑을 주고 정을 붙이다가 정을 떼는 일이 얼마나 고약한 일인가를 겪어서 알기 때문이었다. “네가 안 키워봐서 그렇지 새 중에도 문조란 놈은 정말 영리하고 울음소리도 참 예쁘단다.” 친구가 자꾸 권하는 말과 아이들이 조르는 바람에 문조 두 마리를 우리 집 식구로 맞게 되었다.

 

  깃털도 채 자라지 않아 볼품없던 어린놈을 데려다가 매일 물을 갈아주고 좁쌀에 계란 노른자를 뿌려 주기도 하면서 정성껏 야채도 챙겨 주었다. 친구 말대로 아침에 창문을 열면 쪼로롱 하며 우는소리가 반가웠고, 내 발걸음 소리가 나면 먹이를 주러 오는 것을 아는지 머리를 쫑긋거리며 빨간 눈을 깜박거리곤 하였다.

 

  겨울에는 추위를 잘 탄다고 하여 좁은 다용도실에 들여놓고는 온통 좁쌀과 깃털 때문에 지겨워하면서도 빨리 성조가 되기만을 기다렸었다. 요즘에는 하얀 자태가 흡사 백조를 연상시키듯 제법 멋있어져서 곧 새 식구가 늘겠구나 하며 첫 손자 기다리는 할머니 같은 심정으로 유심히 새장을 살피곤 하였었다. 하긴 요 며칠 전 새도 못 챙길 만큼 슬픈 일이 있었다.

 

  남편과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료 한 분이 얼마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열흘 전 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 와서 그 특유의 웃음을 터트리면 건강을 자랑했었는데 뇌출혈로 가족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신 것이었다.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내오던 터이어서 그 부인의 고통과 슬픔이 나에게도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 왔었다. 그리고 나와는 무관한 일인 듯 잊고 살았던 “죽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죽음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치러야 할 삶의 한 과정일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걸까? “죽음을 연습하라”는 말처럼 우리가 잘 죽기 위해서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 것인가? 또 나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집착과 아집에서 벗어나 홀로 설 수 있는 의지를 기를 것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오늘 문조의 죽음을 보고 또 살아있는 것에 대한 목숨의 유한성을 실감했다. 아무리 아끼고 사랑하는 것일지라도 영원한 것은 없고 언젠가는 떠나가고 떠나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비록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생각하며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다보면 조그만 불만이나 불평은 많이 줄어 들 것이다.

 

                                                                                                                                                           1993, 5

'나의 글모음 > 수필집(불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려움에 대하여  (0) 2009.07.24
어머니의 다변  (0) 2009.07.23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0) 2009.07.23
내가 생각하는 불교  (0) 2009.07.23
겨울산  (0) 2009.07.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