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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내가 생각하는 불교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23.

내가 생각하는 불교

 

 

  불교는 우리 생활 속에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서 굳이 종교라는 생각보다는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법도(法道)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젊을 때부터 산과 여행을 좋아하던 내가 낯선 길을 떠나서 만난 것은 으레 산수(山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산사와 암자였다. 도시의 매연 속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안고 산을 오르면 흐르는 땀과 함께 마음도 홀가분해지고 목탁소리와 고즈넉한 풍경소리에 그동안 탁해졌던 마음도 편안해지곤 했다.

 

  삼십여 년 전이던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사랑 때문에 번민(煩悶)하던 처녀 시절이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무슨 생각에 골몰했던지 버스를 내린 곳은 어느 절 입구였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사찰이 보였다. 아침 일찍 찾아온 처녀의 거동이 수상하였던지, 어느 스님이 나오시더니 어떻게 오셨느냐며 다정히 맞아주셨다.

 

  막상 어떤 위안을 찾아 그곳까지 오기는 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얼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냥 마음이 괴로워서요.”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무척 번민이 많으신가 보군요. 천천히 돌아보신 후 저하고 얘기나 나누고 가시지요.”라고 부드럽게 대답해주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마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져서 스님의 호의도 무시하고 그냥 돌아서서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갑자기 출근길에 증발해버린 나 때문에 금고를 열지 못한 사무실에서는 난리가 났고 몇 년 동안 지각 한번 없었던 나는 호되게 홍역을 치러야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 때문에 발생했고. 그 매듭을 풀 수 있는 사람도 나 혼자 뿐이니 피하고 도망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를 해야 한다는 해답을 얻기 위한 하루의 일탈이었다.

 

  그 후로 사랑하던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세상에 무서운 것이 너무나 많아졌다. 젊을 때는 그렇게 만만해 보이던 세상도 살얼음판처럼 느껴졌고, 내가 사랑으로 보살펴야하는 가족이 생기니 두려운 존재도 많아졌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동기로 종교를 찾게 되었고,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천주교인지라 이십 여 년 전에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키우실 때만 해도 종교를 모르셨던 어머니가 나이가 드시더니 불교에 입문하시어 늘 기도와 법문을 듣고 계셨다. 더구나 자식들 뒤치다꺼리가 끝난 후 여서 일까 어머니의 기도 생활은 철저하리만큼 열심이셨다. 더구나 추운 날씨에 불편한 몸으로도 여러 기도에 참석하시곤 해서 자식들의 걱정이 태산 같았다.

 

  어머니는 차츰 건강이 나빠져서 집에서 불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일이 많아지셨는데, 가끔 집에 가서 기도 중에 뵙는 어머니의 얼굴은 정말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때는 어머니는 무엇을 위해 저리도 간곡하게 기도를 하시는 걸까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때의 어머니의 나이와 비슷해지고 있으니 그때의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법문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은 “보왕삼매론”이다 불교 문구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이해가 될 뿐 아니라 구절구절이 어쩌면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지 늘 벽에 부쳐놓고 보곤 한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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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병으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2.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3.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4. 수행하는 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으면 서원(誓願)이 굳게 되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마군(魔軍)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으로 삼아라.' 하셨느니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하셨느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원림(園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果報)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 하셨느니라.

 

10.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본분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 법문은 꼭 불교신도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너무도 주옥같은 말씀이기에 아무리 읽어도 늘 새롭다. 그래서 우리 가족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들려주고픈 말씀이기도 하다. 가끔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은 “아니 천주교 신자 집에 불교 법문이 붙어 있네?”하며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서라면 종교의 다름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더구나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십 여 년 전 우연히 “불교”지에 수필을 쓰게 되면서 “불교”지를 늘 접하게 된 후부터일 것이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이제는 불교 신도인 친구들을 따라 유명한 스님의 법문도 들으러 다니고, 여행을 갔다가도 근처 사찰은 꼭 들리게 된다. 그것은 부처님께 드리는 나의 경외(敬畏)심 이기도 하다.

 

                                                                                                                                           20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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