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좋을 순 없다.
내가 즐겨보는 TV프로 중에 “인간극장”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휴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엮어서 보여주는 프로인데, 나는 한 주일 동안 그들의 삶에 빠져서 같이 울고 웃는다. 거기에는 기구하고 별난 삶도 있고 거룩하고 숭고한 삶도 있다. 그리고 정말 가슴 아픈 사연이나, 아랫목처럼 가슴이 훈훈해지는 따뜻한 사연들도 있다. 5일 동안 한편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듯 보통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에 빠져서 같이 공감을 하며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번 주에는 우리 아이들처럼 젊은 부부가 한적한 산골마을로 들어가 문명하고는 거리가 먼 촌부로 살아가는 이야기였는데, 제목이 “이보다 좋을 순 없다.”였다. 도시에서 낳고 자란 젊은이들이 정말 햇살 같은 소박한 행복을 맛보며 자연 속에 살고 있어 더욱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른다. 그들 부부가 모든 사람들이 엘리트라고 칭송하는 일류 대학을 나와서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과 일을 뿌리치고 시골 오두막집으로 들어온 이유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무엇엔가 쫓기는 듯 항상 바쁘고 초조한 도시생활보다는 푸근한 자연에 안겨서 느긋하게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었다고 한다. “행복한 삶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행복한 일상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미지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오늘이 불행하고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것도 우리처럼 중년의 나이도 아니고, 한창 욕망이 크고 야망에 도전하고픈 젊은 나이에 그런 삶의 이치를 터득하고 과감한 선택을 한 젊은이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것은 정말 자기가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적도 드문 산골 오두막에서 텃밭을 가꾸며 그곳에서 나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그들은, 이런 생활을 하기위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시골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요리와 목공일도 배우고 농사도 배우면서 만능 재주꾼이 되어야 했다. 하기는 남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산골이니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어야만 될 것이다.
사람은 그 다양한 모습만큼이나 좋아하는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삶보다는 남들의 사는 방식을 따라 허겁지겁 쫓아가느라 넘어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런데 젊은 나이의 그들은 원하는 삶을 위해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산골 생활을 선택한 것은 정말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내가 TV를 통해 그 부부의 모습을 넋을 잃고 보는 것은, 넓은 창가에서 안개가 피어나는 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그림 같은 전원생활이 부러워서가 아니다. 그동안 공들여 쌓아왔던 지식이나 익숙하고 편한 삶을 과감하게 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 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물질적이고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이들에 비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불편한 것도 겁내지 않고, 불모지 같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그들의 순수함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겁내고 좋은 차를 타지 않으면 남의 눈을 의식하는 요즘 사람들에 비하면, 그들의 생활방식은 너무도 당당하고 소박했다.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을 지극히 만족해하며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50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이런 느낌을 받던 때가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저 무탈하게 사는 일상이 행복이라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정말 자기 삶을 사랑하고 만족하며 살아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조금이라도 넓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끈을 동여매며 절약을 하였고, 아이들이 크고 나서는 남들처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생각지도 않던 재난이 닥치고 내가 움켜쥐고 있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을 때, 나는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기가 힘들었다.
나이가 들면 하고 싶던 여행이나 맘껏 하리라던 노후의 여유는 사라지고, 건강하던 몸과 마음도 많이 약해졌다. 가까스로 몸과 마음을 추슬러 안정을 되찾은 요즈음,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굳이 노후의 안정이나 미지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허비하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어느 철학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은 오늘일 뿐이라고....” 그들이 말한 것처럼 먼 훗날의 행복을 꿈꾸기보다, 그냥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한 오늘을 만들려고 노력할 뿐이다. 행복한 오늘이 조금씩 쌓여서 행복한 삶이 된다는 것을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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