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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영양보충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17.

영양 보충

 

 

   오늘은 친구들 모임이 있어 오랜만에 명동에 나갔다. 25년 전에 한 동네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통해 가까워진 친구들인데, 세월이 지나다보니 모두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나처럼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신도시에 사는 사람도 있다 보니, 자연히 교통도 편하고 거리상 중심지역인 명동에서 만나곤 한다.

 

  원래 명동이란 지역은 직장인이나 젊은이들이 활보하기 좋은 거리지, 중년의 아줌마들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나이든 사람들이 만날 장소나 식사를 할 장소도 마땅치 않거니와 조용히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곳도 별로 없어 다른 곳을 찾았지만, 여러 사람의 교통문제 때문에 결국은 다시 명동으로 오고 말았다.

 

  오늘도 우수가 지났건만 늦추위가 기승을 부려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우리는 우선 돈이 안 드는 은행의 대기실에서 만난 다음 점심을 먹는데, 항상 무엇을 먹을까 정하는 것이 고민이다. 다행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나 음식점의 바쁜 시간은 지났지만, 그래도 일곱 명이 느긋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누군가 오늘같이 추운 날은 뜨끈한 삼계탕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에 우리 일행은 오랜 기억을 되살려 충무로에 있는 영양센터를 찾아갔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음악소리와 상인들의 마이크 소리를 뚫고 충무로 거리를 지나니 주변의 번쩍거리는 쇼윈도의 화려한 색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양센터 건물이 보였다. 그때의 반가움은 오랜만에 고향동네에 온 느낌이었다. 현대식 상가들 사이에 아직 이런 음식점이 건재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얼마 만에 와보는 영양센터인가. 유리창 너머로 닭을 나란히 끼워서 굽고 있는 모습도 그대로이고 음식점 안의 풍경도 옛날과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우리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지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골목 안에는 어떤 음악 감상실이 있었으며, 어느 호텔 커피숍의 분위기가 좋았다느니 하며 3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리느라 모두 흥분해 있었다.

 

  나에게도 이곳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이다. 60년 대 말, 명동입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나에게 청춘의 감성과 객기를 부추겨주던 곳이 바로 충무로 거리이다. 커피 한잔을 놓고 몇 시간씩 인생을 논(論)하고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던 곳이며, 이룰 수 없는 꿈과 힘든 사랑에 아파하며 방황하던 동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절 가난한 학생과의 데이트는 두 사람의 주머니 사정 때문에 늘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했다. 군복을 시커멓게 물들여 입은 작업복에 채권 장수 같은 커다란 책가방을 옆에 끼고 심각한 얼굴로 그가 나타나면, 나는 누가 볼세라 늘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시간만 나면 달려와서 내가 나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힘겨운 자취생활로 그의 볼은 움푹 꺼져 있었으나, 눈빛만은 늘 매섭도록 진지했다.

 

  그런 모습이 하도 불쌍해서 내가 월급이라도 타는 날이면 영양보충 시켜준다며 한껏 호기를 부리며 오던 곳이 바로 이 영양센터이다. 닭 한 마리에 영양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나마는 그래도 맛있게 닭을 먹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왜 그리도 마음이 흐믓해 지는지 몰랐다. 게다가 어느 때는 자랑을 하고 싶었던지 느닷없이 친구들 까지 데리고 와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한 달에 한번이나 먹어 보는 통닭이 어쩌면 그리도 맛이 있던지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졸업 후 직장에 취직이 되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자 우리는 슬그머니 영양센터를 잊어갔다. 아마 그때는 그곳보다 더 좋고 맛있는 곳에 갈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 동안의 초라함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다른 곳으로 부지런히 나를 끌고 다녔다. 그러면서 싸우고 화해하며, 헤어지고 만나던 6년의 씨름 끝에 우리는 결국 결혼을 하였다. 35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 영양보충을 해주었기에 지금까지 건강할 수 있다며 농담들을 하곤 한다. 모두 가난하던 시절의 추억이기에 더욱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요즘은 그런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모두 영양과잉 상태에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양껏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메뉴를 찾느라 야단들이다. 우리 세대만 되어도 통닭 같은 것은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삼계탕을 먹고 나서도 추억의 통닭 맛을 보자며 기어이 한 마리를 주문해 먹어보더니 모두 옛날 맛이 아니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곳에서 40년을 이어온 음식 맛이야 같을지언정 우리의 입맛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이고 홀쭉하던 남편도 지금은 허리둘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의 육체는 영양과잉 상태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의 불타던 패기와 열정은 시들고 의욕마저 사라진 초로(初老)의 길목에 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의 우리는 정신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은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저 무디어진 감성으로 타성에 젖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영양보충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인 곳에 영양을 불어넣어야 하리라. 노년에 외롭지 않고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는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하고 남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할 줄 알며 사랑을 실천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20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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