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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푸른 강물처럼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17.

푸른 강물처럼

 

 

  모처럼 하늘은 쾌청하게 맑아서 마치 가을하늘처럼 높아 보였다. 한강변에는 지루하던 장마가 잠시 주춤한 사이를 틈타 운동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점점 활기를 띠고 있었다. 축구나 농구공을 들고 나와 파란 잔디밭에서 시합을 벌이는 젊은이들의 “우아!”하는 함성이 활기차게 들리고, 병아리 같은 유치원생들을 데리고 나온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도 마냥 경쾌하게 들린다.

 

  눈부신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짧은 옷만 입은 채 달리기를 하거나, 곡예를 하듯 속도감을 즐기며 인라인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한강변은 북적이기 시작했다.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에 휩쓸리듯 나도 힘껏 페달을 밟는다. 등줄기에는 벌써 흥건히 땀이 흘러내리지만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온몸을 가르며 지나간다.

 

  작년 이맘때였다. 친구에게서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는데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전화가 걸려왔다. “이 나이에 자전거는 무슨...”하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정말 자전거를 배우면 나도 잘 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자전거를 사주면서 나도 배워 보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몇 번이나 넘어지고 나서는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십도 훨씬 넘은 나이에 용기를 내게 된 것은 어떤 용감한 어머니의 감동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재작년쯤 볼일이 있어 한동안 아침에 운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매일 같은 장소에서 길이 막히고 차가 서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녀가 있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여고생을 자전거 뒤꽁무니에 태우고, 밀려있는 차들의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배짱 좋게 달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매일 딸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모양이었다. 가끔 난폭한 오토바이가 운전자들을 놀라게 하며 차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보았지만, 자전거로 덩치 큰 딸을 태우고 곡예를 하듯 지나가는 모습은 정말 경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아마도 학교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거나 시간에 쫓기는 아이를 위해 그런 모험을 하는지는 몰라도 정말 거룩한 모정(母情)이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다가 날쌘 제비처럼 밀려있는 차 사이로 빠져나가는 두 모녀의 모습을 보곤 나는 눈물겨운 모성애와 알 수 없는 경이로움에 감동을 받곤 했다. 그리고 한편 능숙하게 자전거를 타는 중년여인이 위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불현듯 그녀를 떠올리자 나는 자석에라도 이끌리 듯 용기를 내어 자전거를 배우러 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한참을 걸려서 암사동 한강변으로 나가서 뜨거운 뙤약볕에 땀을 흘리면서 일주일을 버티자 조금씩 균형이 잡히면서 자전거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혼자서 두 바퀴로 달리게 된 것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걸음을 뗄 때처럼 얼마나 자신이 대견한지 엉덩이가 쓰리고 아픈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그 후 틈이 날 때마다 나는 한강변에 나가 열심히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고 팔이 삐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자전거를 배워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장이라도 볼 양으로 배운 자전거였지만, 차츰 그 매력에 빠져들고 나자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구나 자전거를 가르쳐준 곳에서 취미로 자전거를 즐기는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여러 곳을 다니며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요령과 기술을 배웠다. 급한 커브길이나 높은 언덕을 오르내릴 때의 기어 작동 법을 배웠고, 펑크가 났을 때의 간단한 수리법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강뿐만이 아니라 계절마다 아름다운 여러 코스를 돌며 자연이 주는 감동과 혜택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나서 천호대교부터 행주대교까지 21개의 다리가 있는 한강변은 물론이거니와 양평이나 남한산성 자락을 돌며 운치 있는 오솔길을 익혔고, 춘천의 호숫가를 달리며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감상하기도 했다. 벚꽃이 만개할 때는 하늘거리는 꽃비를 맞으며 전주 군산 간 백리 길을 달렸으며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이는 북한 땅과 출렁이는 바다를 보며 강화도를 돌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경치나 멋있는 풍광은 드라이브를 하거나 차안에서 보는 것과는 아주 느낌이 달랐다. 힘들여 페달을 돌리고 땀을 흘리고 나서 볼에 와 닿는 공기나 바람은 볼을 간질이는 여인의 숨결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나서 건강도 많이 좋아지고 체력도 늘었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였다.

 

  그저 방관자처럼 모든 것이 시들하던 세상이 새로워 보이고 다시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한때는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 무력감에 시달리던 내가, 딸을 태워다 주던 전사(戰士)와 같은 중년여인처럼 씩씩하고 용감해진 것이다.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무엇이든지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생겼다.

 

  오늘도 나이 30대부터 70대까지 있는 우리 동호회원들은 몸에 꼭 붙는 바지와 원색의 유니폼을 입고 줄지어 한강변을 신나게 달려간다. 내년쯤에는 체력을 키워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꿈꾸는 그들에게 누가 할머니라고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나도 삶의 애환(哀歡)과 고뇌의 짐을 잠시 풀어놓고 푸른 강물을 보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200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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