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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열사의 모래바람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7. 17.

열사(熱沙)의 모래 바람

 

 

  작년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몇 십 년 만의 혹서라고도 하고, 지구가 점점 뜨거워져서 일어나는 기상이변이라고도 했다. 그런데다가 가뭄까지 겹쳐서 농민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태우고 목마르게 했다. 우리 집 거실 한쪽에는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져온 장미석이라는 커다란 돌이 자리 잡고 있다. 하얀 받침대 위에 붉은 모래를 깔고 그 돌을 세워 놓았는데, 그 돌을 볼 때 마다 숨 막히게 덥던 열사의 나라를 생각나게 한다.

 

  십여 년 전쯤에 남편이 중동지역에 나가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 때문에 한국에 남아 있었는데, 어느 날 자기가 일하는 곳을 와보고 싶지 않느냐면서 느닷없이 비행기 표를 보내왔다. 그 때만해도 여자는 규제가 심한 아랍 쪽을 여행하기 쉽지 않은 일이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힘들게 수속을 마치고 남편에게로 향했다. 까다로운 입국절차를 마치고 리야드 공항에 내리니 달려드는 열기로 숨이 막혀왔다.

 

  남편의 편지로 그곳의 기온이 사십 도를 오르내린다는 것과 주차해 놓은 자동차 위에 계란을 깨트리면 반숙이 될 정도의 더위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더했다. 공항에서 남편을 따라 숙소로 가기위해 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리는데, 사방은 가도 가도 풀 한포기 없고 끝이 없는 사막뿐이었다.

 

  시속 160 KM 정도의 속력을 내며 아스팔트 위를 한참 달리다보면 길게 뻗어있는 도로 위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물웅덩이가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물기라고는 전혀 없는 착시현상이 나타나곤 했는데, 이런 것이 일종의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베일이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하여 남편이 기거하는 숙소에 도착하니 내가 정말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한낮의 마을은 너무 고요해서 사람구경도 하기 힘들었고, 도시는 늘 정적 속에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건물의 창은 밖을 볼 수 없도록 차양을 쳐 놓았고 옥상의 담도 높게 쌓아서 전혀 거리를 내다 볼 수가 없도록 해 놓았다.

 

  아랍 쪽에서도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도덕적인 규제가 심해서 여자들은 모두 “차도르”라는 검은 천으로 얼굴과 몸을 가리고 다닌다. 또한 가족제도도 우리나라와는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얼른 이해하기 힘들었다. 부부관계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어 남자는 여러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남자가 여자를 신부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처가에 거액의 지참금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은 남자는 서너 명의 부인을 둘 수도 있지만, 돈이 없는 남자는 평생을 홀아비로 늙는다고 했다.

 

  가끔 도심에 나가면 너덧 명의 부인과 십여 명의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는데, 너무 의아해서 왜 저렇게 함께 데리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설명인즉 남편은 여러 부인에게 아주 공평해야 하며, 부인들은 절대 투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곳의 도덕이자 불문율이라고 한다. 또한 시골의 농장에 가보면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장가도 못가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우리나라 남자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어느 날은 남편이 일하고 있는 공사현장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간 근로자들이 무더운 날씨에도 모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숨이 막힐 정도의 무더위에도 그들은 모두 털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머리에서 목까지 완전히 뒤집어쓰게 되어 있고 눈가에만 빠끔히 구멍을 뚫어 놓은 털모자였다. 그 이유가 너무도 궁금하여 물었더니 강한 자외선과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곧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잠깐 동안 공사 현장을 둘러본 내 모습은 온통 모래투성이였고 입안은 작은 모래 알갱이들로 인해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높은 임금과 일자리를 찾아 남의 나라에 와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고생은 되리라고 추측을 하긴 했지만, 뙤약볕 속에서 털모자까지 쓰고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의 나라에까지 와서 숨 막히는 더위와 모래바람과 외로움을 극복하며 일하고 있는 그들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잠시 동안의 외유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는 귀국을 하는 우리 근로자들도 많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시커멓게 탄 얼굴과 고생에 지친 모습임에도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 듯 했다. 또한 비행기를 바꿔 타야하는 공항 면세점에는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고국의 여자가 반가웠던지 내게로 몰려와서 여러 가지를 묻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여자들은 어떤 물건을 좋아하며 아내에게는 어떤 선물이 어울리는지 묻고, 자녀들의 선물은 어떤 것이 유익한지 물어 댔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가족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가족은 항상 가까이 있기에 그 소중함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지낼 때가 많다. 그러나 저 사람들처럼 아무리 힘들게 일을 해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자기가 가진 것을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은 관계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편에게 다녀오기 전에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한창 아빠를 필요로 할 또래의 아이들이 번갈아 잔병치례를 했고, 집안의 경조사 등 힘든 일들을 혼자 떠맡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철없고 감상적인 내 성격 때문에 투정도 많이 부리고 남편을 당황하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다녀온 뒤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털모자를 쓰고 열심히 일을 하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마치 장미꽃이 피어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장미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돌은 오랜 세월 모래가 굳어져 기묘한 형태로 변했다고 한다. 무슨 인연으로 두어 사람이 들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이 돌이 대서양을 건너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돌을 볼 때마다 열사의 나라와 모래 바람을 떠올리게 되며, 또한 가족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199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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