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에게 편지를 쓰리라 마음을 먹었다. 펜을 들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그 동안 잘 지내고 있느냐고 공허한 인사말을 쓰고는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몸은 아프지 않은지,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느냐고 묻고는 또 막막해진다. 무엇인가 위로가 되고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마음속에만 그득할 뿐 얼른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막내는 셋 중에서 유일한 여동생이자 막내 동생이다. 맏이인 내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고 끝으로 여동생을 두었는데 나하고는 13 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동생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철부지 아이쯤으로 여기곤 했다. 더구나 내가 남편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 할 때쯤에는 초등학생이어서 남편도 처제라는 호칭보다는 그저 “향미야”라는 이름을 자연스레 부르곤 했다.
그러던 동생이 어느덧 나이가 차고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는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어놓은 것 같아 걱정부터 앞섰다. 막내로 자라 이해심도 부족하고 팔팔한 성격을 잘 다스려 과연 원만한 가정 생활을 이룰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 동안 나와는 오래 떨어져 사느라고 자상하게 언니 노릇도 못해준 것도 못내 마음에 걸렸다.
동생이 하얀 드레스를 벗고 신혼여행을 떠날 때 나는 처음으로 긴 편지를 써서 동생의 여행 가방에 끼워주었다. 그 전 날밤 걱정으로 잠을 설치며 오랫동안 편지를 썼다. 언니 노릇을 제대로 못해준 미안한 마음과 결혼 생활을 먼저 한 선배로서, 아내와 며느리와 엄마의 의무에 대하여 밤새워 편지를 썼다. 그 속에는 부부란 모자라는 부분을 서로 채워주며 수 없이 용서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쓴 기억이 난다.
그러나 동생은 결혼하고 나서 염려한 것과는 달리 알뜰하고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 나갔다. 서로 고향이 달라서 식성이 전혀 다른 남편의 까다로운 입맛까지 맞추어 가며 요리 솜씨를 발휘해서 어머니와 나는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그 후로 동생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 형제를 낳아 기르면서 정말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쯤이었다. 추석 차례를 치르고 이튿날 친정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식구들끼리 모여 멀리 지방에 있어서 못 오는 막내 동생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제부(弟夫)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울먹울먹하더니 지금 막 작은놈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우리는 자세한 경위도 묻지 못한 체 허겁지겁 마산으로 내려갔다. 그 긴 시간 동안 운전을 하는 남동생들이나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좌불안석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무슨 모진 운명이기에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것이 세상을 떠나다니 너무도 기가 막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밤을 새워 달려간 병원 영안실 앞에는 동생이 실신해 쓰러져 있고 갑자기 연락을 받고 달려온 사돈 댁 식구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명절을 친가에서 보내기 위해 할머니 댁에서 놀다가 그만 이층 옥상에서 떨어져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놈은 유난히 영특하고 성격이 밝아서 동생 부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놈이었다. 태어날 때는 제달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나오는 바람에 인큐베이터에서 세상구경을 먼저 하여서 저희 부모의 애를 태우던 녀석이었다. 그러나 자랄수록 걱정과는 달리 건강하고 싹싹하여 “저놈이 없었으면 어찌 했을까”할 정도로 기쁨을 주던 아이였다.
하느님도 순수하고 맑은 영혼은 먼저 데려가신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억울한 선택이었다. 10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면서 부모와 친척과 친구들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고 간 아이였다. 그 아이는 맑고 티 없이 순수한 영혼으로 오염된 어른들의 가슴에 상실의 피멍을 남기고 갔다.
오늘도 슬픔에 잠겨서 넋을 놓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낀다. 어떤 슬픔이나 어떤 괴로움도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만이야 할까. 그 슬픔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짐작만 할 뿐 슬픈 심연의 나락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리라.
나는 전에 참척을 당하여 두문불출 하셨던 박완서님의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책과 함께 동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네가 슬픔으로 아이의 영혼을 놓아주지 않고 집착은 갖는다면 아이는 천국으로 가지도 못하고 엄마 주위만 빙빙 돌 것이라고.... ” 그리고 지독한 슬픔을 겪은 사람만이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삶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음을 이야기하여 주었다.
그 말들이 괴로움에 삶의 의욕까지 상실한 동생에게 공감이 될지 공허한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 것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언니의 애달픈 마음의 편지이므로 동생이 마음에 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곧 가을은 깊어가고 나뭇잎은 떨어져 나무들은 옷을 벗을 것이다. 조카가 하얀 천사가 되어 우리 곁에 오는 때를 기다리며 막내야! 제발 힘 내거라.
199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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