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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한줄기 빛을 찾아서)

힘을 빼는 일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8. 30.

힘을 빼는 일

 

 

  요즘 매일 아침이면 나는 가방을 챙겨서 수영장으로 향한다. 물이 두렵고 싫어서 그렇게도 수영 배우기를 꺼려했는데, 의사 선생님의 권고로 할 수 없이 늦게나마 시작하였다. 열 살이 되던 해 여름, 아버지를 따라 바다에 나가 튜브를 타고 놀다가 물에 빠져서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항구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끝내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불어나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무엇인가 운동을 하려고 두어 번 시도를 하긴 했으나 그때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영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에는 아예 내 적성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물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무릎 때문에 크게 고생을 했다. 몇 년 전에 겨울산행을 하다가 넘어져 무릎인대를 다친 것이 말썽을 부린데다 퇴행성관절염과 맞물려서인지 무릎이 찐빵처럼 부풀러 올라 물이 고였다. 매일 손가락만한 주사기로 한 대접씩 물을 빼내어도 물은 계속 차올랐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다가, 놀라서 대학병원으로 한의원으로 두어 달 부지런히 치료를 다닌 후에야 다행히 염증이 가라앉았다. 그 후 재발이 되지 않게 하려면 뛰는 운동은 중단하고 각별히 관리를 해야 한다고 겁을 주었다. 그런데다 체중이 늘면 해롭다니 무슨 운동인가 해야 되는데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는 수영이 좋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수영장에 등록을 하고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도무지 어렵고 힘만 들었지 시간이 흘러도 별로 진전이 없었다. 더구나 젊은 엄마들 틈에 끼어 물에 뜨는 법부터 배우려니 창피하기도 하고 미리 주눅부터 들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운동을 계속해 왔었고 운동신경이 그리 둔한 편은 아니어서 ‘몇 달 정도 고생을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수영을 배우면서부터는 그런 나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남들보다 잘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대열에서 뒤떨어지지나 않길 바랐지만 그 것도 생각처럼 안 되었다.

 

  새로운 운동을 배우려면 처음에는 힘도 많이 들고 꾸준한 노력이 뒤따라야 된다는 것쯤은 예상하고 마음속으로 미리 준비도 했다. 그러나 도대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조금만 가도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열심히 연습을 해도 안 되다 보니 실망이 쌓여 수영장에 가기도 싫어지고 매일 그만 둘까 말까 갈등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가르치는 선생에게 그런 하소연을 하니 유난히 내 몸에 힘이 빠지지 않아서 그러니 집중적으로 힘 빼는 연습을 하라고 일러주셨다. 그래야만 몸이 물에 잘 뜨고 물의 저항을 덜 받아 수영을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힘 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무리 연습을 하여도 잘되지 않았다. 강습이 없는 날도 수영장에서 열심히 용을 써 봐도 어느새 몸은 경직되어 있고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남편 말대로 “의지의 한국인”처럼 열심히 한 탓인지 일 년이 지난 요즈음은 제법 수영하는 흉내는 내게 되었다. 그러나 더러 나이 드신 분들이 돌고래처럼 날렵하게 물을 차고 나가는 모습들을 보면 부럽기가 그지없다.

 

  하기는 무슨 운동이던지 숙달이 될 때까지는 부단히 연습을 해서 힘든 과정을 거쳐야 힘이 빠지고 자연스러워지는데, 늦게 배운 운동이어선지 유난히 수영은 힘이 많이 들고 어려웠다. 오래 전에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도 온몸이 굳고 어깨에 힘이 빠지지 않아 운전을 하고 집에 오면 마치 두드려 맞은 사람처럼 전신이 뻐근하였다.

 

  또한 골프를 배울 때도 제일 많이 듣던 말이 “힘을 빼라.”는 말이었다. 연습장에서는 제법 스윙을 잘하다가도 막상 필드에 나가 공을 보면 힘이 잔뜩 들어가서 코앞에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멀리 보내야 되겠다는 욕심이 작용하여 그렇게 된다고 했다.

 

  요즘에 이십여 년 가까이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였다. 오래 전에 써 놓은 글들이라 어느 것을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고, 쓸데없이 객기를 부린 글들도 있었다. 더구나 쓸 때는 몰랐는데 대부분의 글들이 자연스럽지가 않고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계곡에 물이 흐르듯이 문장이 자연스럽게 흐르다가 소(沼)를 이루고 웅장한 폭포가 되거나 잔잔한 호수가 되어야 할 텐데, 내 글들은 흐르기도 전에 파도부터 치는 꼴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숙달되지도 않은 문장에 ‘잘 써야겠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그 글 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헛된 욕심을 부리고 살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때의 생각을 부인할 수도 없는 일이니 그 또한 내가 살아온 모습 중에 한 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수영도 그랬을 것이다.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젊은이들 틈에 끼어 배우는 운동이니 나이 먹어서 못한다고 무시당하고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잘해야 되겠다.”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조바심을 치고 뜻대로 되지 않으니 실망부터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당연히 몸이 둔해지고 운동감각도 떨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며 인정하려 들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그런 사소한 일에 초연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쓴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 또한 어리석은 나의 모습인 것을.

 

                                                                                                                                           20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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