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
눈부신 노란색의 태양이 빛을 발하며 후광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도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고 흙을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파란색과 흰색, 황토색이 섞여진 비현실적인 땅 같았다. 거기에 모자를 쓴 사내가 성큼성큼 활기차게 걸으며 씨를 뿌리고 있었다. 그 사내는 어떤 수확을 얻기 위해 무슨 씨앗을 뿌리고 있었던 걸까?
낮에 미술관에서 보고 온 그림 중에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화폭이 있었다. 너무도 유명한 반 고흐 전을 보려고 몇 달을 벼르다가 겨우 끝나기 며칠 전에야 미술관을 찾았다. 인파가 좀 줄었으리라 생각했으나 미술관은 역시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행이 일찍 나와서 표를 구입한 친구의 도움으로 나도 인파에 휩쓸려 관람을 시작했다.
어떤 화가보다도 비극적이고 처절한 삶을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영혼과 생명을 불사르며 그림을 그린 화가. 불꽃같은 정열과 격렬한 필치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한 사람. 그에 대한 평가와 찬사는 수 없이 많다. 그저 막연히 유명하고 위대한 화가로만 알고 있던 반 고흐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가을부터였다.
작년에 오랫동안 써놓은 글들을 엮어 책으로 묶었다.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 오래 꿈꿔왔던 일이기도 했지만, 어설픈 속내를 들킨 것 같기도 하고 홀랑 발가벗겨진 것 같아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몇 사람이나 내 이야기에 공감해 줄 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은 글을 쓸 때에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공연히 책을 만들면서 걱정하게 되었다.
책이 나올 즈음, 다행이 바쁘신 스승께서 ‘나의 수필세계’를 써주신 다기에 고맙고도 기뻤다. 이십여 년 전 선생님을 만나 수필을 배웠으며, 나를 수필의 글밭으로 이끌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써준 서평 중에서 “그러면서도 가끔은 빈센트 반 고흐의 짓이기는 듯한 노란 붓질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 작가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또 하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선생님은 내 글을 읽고 자신도 몰랐던 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신 것 같았다. 그 글귀가 어떤 의미인지 확연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어느 것에도 흠뻑 빠져보지 못하고 남다른 열정도 없이 글을 쓰는 자신에게 가끔 회의가 들곤 했는데 ‘정말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을까.’라는 기대감에 부풀은 것이다.
그리고 반 고흐를 좀 더 알기 위해 화집을 뒤적이고 그에 관한 글을 읽었다. 대부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을 엮은 <영혼의 편지>란 책을 읽자 너무도 진솔한 그의 글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저 광기어린 천재화가로만 알고 있던 반 고흐도 보통 사람처럼 고민하고 노력하는 소박한 화가였다. 그리고 선배화가인 밀레를 좋아해서 그의 그림을 부지런히 흉내 내며 습작을 했다고 한다.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씨 뿌리는 사람>도 그런 배경에서 태어난 작품인지 모르지만, 씨를 뿌리는 것은 희망과 기대를 잉태시키는 행위이다. 대지 위에 씨앗을 심고 정성을 다해 가꾸다보면 튼실한 결실을 맺는 것처럼 나도 수필의 글밭에 알찬 씨를 뿌리고 부지런히 가꾸어 보련다.
200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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