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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삶의 여정 喜, 怒, 哀, 樂

by 아네모네(한향순) 2014. 3. 4.

 

삶의 여정 희(), (), (), ()

 

한 향 순

 

두어 달 전에 북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녀왔다. 그때의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특히 인상이 깊었던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비겔란 조각공원의 사진들을 다시 들춰본다. 십여 년 전, 잘 아는 지인이 쓰신 수필 중에 이공원에 세워져 있는 모자(母子)상을 소재로 쓴 글이 있기에 다시 한 번 차분히 살펴보고 싶어서였다. 같은 예술품을 보고도, 각자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듯이 그 수많은 조각품 중에 그분은 유독 모자상이 가슴에 와 닿은 모양이다.

 

비겔란 조각공원에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조각가인 구스타브 비겔란이 4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200여점의 화강암 작품과 수많은 청동작품들로 조성되어 있다. 매년 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이공원에 있는 작품들은 인생의 희,..락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조각품을 통해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랑을 한 다음,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게 되는 삶의 여정을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준다. 그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예술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철학적 사유를 끌어낼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공원 입구에서 보이는 정면에는 사람의 일생을 58개의 청동상으로 만든 인생의 다리가 있고 그 위에도 많은 조각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 얼굴을 찡그리고 울고 있는 우는 아이라는 조각상이 유명하다. 도대체 꼬마가 무엇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났을까 궁금했는데 비겔란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의 표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공원에서 최고의 걸작은 제일 위쪽에 있는 모노리스(Monolith)이라는 돌기둥이다. 17m의 화강암에 121명의 남녀가 뒤엉킨 채 조각되어 있는 작품으로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투쟁 ,희망과 슬픔을 농축시켜 놓은 작품이다. 또한 인생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여 위로 올라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위쪽에 작고 수직으로 서 있는 사람부터 아래쪽으로 내려오며 몸집이 커지고 수평을 이루는 자세를 통해 갓난아이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노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손을 내밀어 떨어지는 사람을 끌어올리려는 장면이 있는데,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비겔란은 그렇게 오랫동안 힘든 작업을 하면서도 작품의 의도나 무엇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한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도 않았고 무엇을 표현한다는 설명도 하지 않았으니 느낌은 완전히 보는 사람의 몫으로 남긴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 아이를 낳으면서 가족이 되고, 가족들이 모여 사회가 되고, 사회가 모여 나라가 되며 나라가 모여 세계가 되는 시간들이 쌓여서 세계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둘이 만나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고 또 싸움도 하면서 잠시 우리가 되었다가는 결국 늙어서는 다시 혼자가 되어 소멸되는 존재란 것을 형상화한 것 같다.

 

지난해는 남편과 결혼을 한지 40주년이 되는 해였는데,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 같은 길을 보며 함께 길을 걸어온 지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기쁘거나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쓰러지도록 힘들어서 삶이 노엽고 슬플 때도 많았다. 그러나 같은 길을 가는 동행이 있어 서로 위로하고 부축해가며 지금까지 걸어왔다.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큼의 길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남은 삶의 여정은 더 힘들고 험난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삶의 여정 희,,,>이란 제목으로 부부 사진전을 열었다. 우리가 살면서 느꼈던 감정 중에서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을 주제로 각각 10점씩을 선별하여 모두 40점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그동안 우리를 아껴주고 도와주셨던 친구와 지인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도 보여주고 표현하지 못했던 진정한 감사의 인사도 함께 드렸다.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과연 우리의 이런 생각과 전시작품의 주제가 보는 분들에게 전달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제일 두렵고 걱정이 되었다. 작가노트에 쓴 말은자연은 삶의 근원이자 원천입니다. 우리에게 한없는 생명력을 주고 우리를 조건 없이 품어줍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신비한 자연의 모습을 통해 삶의 여정에서 겪는 . . . .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예술은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을 얻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히 사진을 통해서 사람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꿈꾸어 봅니다.”였는데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비겔란의 작품들을 다시 사진으로 보면서 예술적인 가치는 잘 모르지만 어쩌면 사람의 희,,,락을 이렇게 섬세하고 진솔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작가에게 경외심을 갖게 된다.

 

                2014년  < 계간 수필 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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