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 성지
한 향 순
이곳은 나바호 인디언의 신성한 성지(聖地)이다. 우리가 미국 애리조나 주의 붉은 모래사막을 한참 달려서 도착한 곳은 바로 인디언들의 보호구역 안에 있는 모뉴멘트 밸리이다. 이곳은 한때 서부영화의 산실이었고, 아메리카 원주민 나바호(Navajo) 족의 신성한 삶의 터전이었다. 메마른 땅에 나무 한 그루 찾아 볼 수 없는 척박한 곳이지만, 오래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들의 역사가 배어있는 곳이다. 또한 미 서부 개척시대 때, 백인들과의 싸움에서 패한 그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멀리 보이는 웅장한 바위산을 뒤로 하고 한참을 달리니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에서 보았던 곧은길이 쭉 이어져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신비하고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원래 이 곳은 낮은 분지였는데 수천 년 동안 로키산맥에서 내려온 퇴적물이 쌓여 붉은색 사암이 되었고, 지각이 융기되면서 콜로라도 대고원지대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바람과 물에 의한 침식작용 때문에 고원의 표면이 점점 깎여 나가면서 붉은색 바위산이 광활한 평원 위에 솟아나서 저절로 신비로운 자연의 절경이 된 것이다.
이번 미국여행은 사진을 찍기 위한 출사 여행이기에 숨은 비경을 찾아다니는 코스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감동이 더 큰지 모르겠다. 미국은 원주민들과의 전쟁이 끝나자 그들에게 비옥한 땅이나 돈, 혹은 발전시설 등 여러 가지를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나바호 부족은 오직 황무지의 땅 모뉴멘트 밸리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신이 주신 그들의 신성한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바호 부족을 하나의 자치국으로 부르고, 그들만의 정부가 따로 있어서 인디언 보호구역을 다스리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국립공원에는 속하지 않고 인디언들이 관리하는 부족 공원이라고 한다.
모뉴멘트 밸리에는 광활한 대평원 지대에 뷰트(Butte)나 메사(Mesa) 라고 불리는 거대한 암석기둥과 절벽이 자연의 조각품처럼 향연을 펼친다. 메사는 붉은 색을 띠는 사암을 말하며, 뷰트는 메사가 침식되어 작아진 고립된 언덕을 말한다. 5천만년에 걸친 세월동안 비바람에 형성된 메사와 뷰트들은 세계 어떤 조각품보다도 멋진 자연이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역마차, 황야의 무법자등 많은 서부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관광엽서에 나오는 거대한 3개의 돌기둥이 보이는 뷰 포인트에서 두어 시간 촬영을 마치고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여행자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옛날 인디언들의 생활상이며 역사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여러 가지 액세서리를 팔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관광수입에 의존한다는 인디언들은 아직도 옛날 방식을 고수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평탄치가 않았다. LA공항에서 우리를 안내해줄 가이드를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의 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항공사에 항의를 하니 그때서야 원인을 찾아보겠으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관광객이기에 일정하게 기거하는 곳도 없고 연락처도 없다고 하여도 방법이 없으니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했다. 제일 난감한 것은 짐 속에 삼각대와 촬영장비가 들어 있어 당장 새로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결국 안내인을 만나 이런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의논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트에 가서 삼각대와 촬영 장비는 새로 구입했지만,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고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관광 첫날부터 비가 내려 이틀 동안은 거의 촬영도 못하고 기분이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와서 노을 속의 모뉴멘트 밸리의 풍광을 보고 나니 그동안 우울했던 기분이 모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경치가 멋진 곳에 지어놓은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으며 옛날 서부 영화 속의 장면들을 연상하며 거꾸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였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전혀 모르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들으며 서로 공감하게 되는 것.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의 한 자락에 특별히 자리를 잡게 되는 기억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마음이 촉촉해지고 감미로운 추억이 오래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 2014년 <에세이 문학 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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