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한 향 순
늦여름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오후, 시원한 바닷바람을 쏘이려 바다에 나갔다. 작은 포구에는 썰물이 되어 검은 갯벌이 모습을 드러내고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작은 섬 뒤로 불그레한 노을이 조금씩 잠겨들고 있었다. 한낮에 따갑던 태양도 서쪽으로 기울며 점점 쇠락하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기분 좋게 땀을 식혀주고 있다.
미처 물이 빠지지 못한 갯고랑에는 작은 물고기가 남았는지 갈매기들이 가끔 그 위를 선회하고 있다. 갈매기 한마리가 한참을 비행하다가 안착 한곳은 갯벌 속에서 졸고 있던 폐선이었다. 눈여겨보기 전에는 그것이 폐선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작은 목선은 시커먼 갯벌 속에 거의 잠겨 들어가고 있었다.
한때는 주인이 애지중지하며 배를 길들였을 것이고, 파도와 싸우며 어부와 함께 싱싱한 생선을 잡아 그들의 밥벌이를 책임졌을 작은 목선이다. 이제는 늙고 쇠락하여 주인에게 버려지고 종래에는 아무런 항거도 못하고 갯벌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는 왕성했던 시절 겪었던 수많은 사연과 많은 기억들을 함구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갯벌에 잠겨있는 폐선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온다. 사람도 저 폐선처럼 늙고 병이 들면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결국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것이라는 당연한 삶의 이치가 떠올랐다. 갯벌 한구석에 버려진 얽히고설킨 그물처럼 복잡한 우리의 삶도 어찌 보면 아름다운 소멸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에 오랫동안 벼르던 티베트에 다녀왔다. 하얀 설산위에 알록달록한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티베트의 풍경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서 왜 그렇게 마음이 끌렸는지 모르겠다. 마치 내가 오래전에 가보았던 전생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황폐한 산자락과 척박한 마을은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곳 같기도 했다.
티베트는 4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인데다 힘든 여행일정에 체력이 버티어 낼지 걱정이어서 오래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결행을 하였다. 고원은 대부분 해발이 높아서인지 햇볕이 강하고 비가 적어 나무도 보기 힘들다. 신도 외면한 것처럼 메마르고 혹독한 기후와 황폐한 환경 속에서 사는 티베트인들은 오직 부처님께 의지하며 더 나은 내세를 꿈꾸며 산다. 그들의 일상은 눈을 뜨면서부터 마니차를 돌리고 기도와 수행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발길이 닿은 곳에는 항상 알록달록한 오색 깃발의 룽다와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타르초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은 불교의 경전과 기도문을 적은 깃발로 불성과 생명을 상징하며 우주만물을 의미한다. 룽다는 긴 장대에 세로 줄로 매단 한 폭의 기다란 깃발로,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바람을 박차고 달리는 말갈기와 비슷해서 바람의 말, 풍마(風馬)라고도 한다. 타르초는 오색의 네모난 깃발을 길게 엮어 바람에 날리게 한 것으로 얼핏 보면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만국기를 연상하게 한다.
티베트 인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바람에 깃발이 한번 펄럭일 때마다 거기에 적힌 경전을 한번 읽은 것으로 생각하며, 깃발이 바람에 완전히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걸어 둔다고 한다. 룽다에는 “옴 마니 반메흠” 같은 경문이 가득 씌어있다.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서 모든 중생들이 해탈에 이르기를 바라는 티베트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1950년 중국의 침공으로 수많은 티베트 사람들은 나라를 잃고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이나 높고도 척박한 땅인 인도 북부지역으로 이주를 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인들을 서쪽에 있는 장족, 즉 서장족이라 부르며 옛 티베트 지역도 중국내 서장(西臟) 자치구라고 한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척박한 환경에서 오로지 불교를 믿으며 부처님을 의지하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산한 현실은 공덕을 쌓는 시간이며 혹독한 가난 또한 다음 생을 위해 선업을 쌓는 준비단계라고 여긴다.
티베트 불교의 경전으로 불리는 바르도 퇴돌 <bardo thodol>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 죽음을 직시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인데,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로 불리기도 한다. 그 책에는 사람이 죽고 나서 마주하는 사후세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아서의 삶의 행태, 즉 업보와 공덕이 죽은 후 새로 태어 날 삶의 행태를 좌우한다는 줄거리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죽음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보니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며 삶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죽음을 공부해야 한다.”고 철학자들은 말한다.
해가 바다 속으로 떨어진 후에도 한참이나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고, 붉은 여명 속에 갯벌로 잠겨 들어가는 폐선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 에세이 21 > 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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