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한가요.
한 향 순
어느 날 신문에서 에세이 한편을 읽었다. 서로 다른 종교의 길을 걸어갔던 두 친구가 40여년
만에 만나기로 하고 재회를 기다리며 쓴 글이었다. 두 친구는 같은 신학교에서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으며 친해졌다고 한다. 한창 피가 뜨거웠던 청춘의 그들은 날마다 만나서 인생과
신앙에 대하여 수많은 이야기를 했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둘 중의 한 명은 불교에
뜻을 두었고 끝내 출가를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은 천주교 사제가 되어 40여년을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불가(佛家)에서 보내며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많은 번민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인도에 가서 그 답을 찾았고 다람살라에서 30여 년
가까이 살았다고 한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던 그 두 친구가 40년 만에 만나서 나눌 수 있는 첫마디는 무엇일까.
에세이를 쓴 신부는 친구에게 “야! 너 지금 행복하냐?”라고 묻고 싶다고 했다. 그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도
던지는 준엄하고 무서운 질문이었다. 온 마음을 다해서 대답해야 하는 고백이어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그들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추호도 거짓 없이 대답해야 하는 절명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래야 이제까지 걸어 온 길이 보이고 또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동안 친구나 친지들에게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통해서 “행복 하세요.”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남발하면서도
정작 “나는 정말 행복한가?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인가?”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누군가 “행복의 원천은 자기 자신에게 있으니 자신에게서 찾으라.”라는 말을 했다. 적어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가 있다. 중 고등학교를 매일 붙어 다니고 비슷비슷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
그 친구는 불현 듯 브라질로 이민을 간다고 했다. 답답한 한국의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낯선 나라에 가서
힘껏 노력을 하며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했다. 이왕 내린 결정에 붙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부디 낯선 나라에
가서 잘 살기만을 빌어 주었다. 그러나 빈손으로 간 타국 생활이 어디 만만했겠는가.
처음에는 무척 힘들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몇 년 후에는 의류 봉제 사업을 하며 고생한 보람이 있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했고, 한국에도 가끔은 나와서 얼굴을 보여주곤 했다. 우리는 이역만리 떨어져 살면서도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타국생활이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늘 잘 지내고 있으며 행복하다고 대답했고
나는 그런 친구가 부럽기조차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 친구에게서 소식이 끊기고 통 연락이 되질 않았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고 답답했지만
통신시설이 발달되지 않던 시절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그녀의 언니를 통해서 들은 소식으로는
친구의 남편이 너무 과로를 하다 지병이 생겼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아니 그럼 낯선 타국 땅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고 생활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너무도 놀라운 소식이었다.
조금이라도 잘 살아 보겠다고 그 힘든 이민 생활을 선택했는데 정작 동반자를 잃었으니 친구의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다. 그렇다고 연락이 안 되니 위로도 할 수 없고 도움도 줄 수 없이
세월만 흘렀다.
그러다가 십년쯤 후에 그 친구하고 다시 연락이 닿았다. 어찌어찌하여 내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해온 것이었다.
듣던 대로 격랑의 세월동안 이를 악물고 사느라 눈을 돌릴 틈도 없었으며 연락도 못했다고 했다.
이제는 아이들도 컸고 남편이 하던 사업을 이어받아 어엿한 매장까지 갖출 정도로 성공을 했다고 한다.
나는 또 친구에게 하릴없이 물었다. “너 정말 그곳 생활이 외롭지 않고 행복하니? 아니면 형제들이 있는
한국에 들어와서 살 생각은 없니?”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늘 하던 밝은 목소리로 지금 생활에 만족하며
아주 행복하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본인이 행복하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친구는
그 당시 아주 힘든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설 때가
가끔 있다. 만약 그럴 때 정말 자기가 진정 바라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할 것이다.
이년 전에 미얀마를 여행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의 여행안내를 맡아준 한국여인이 있었는데 하얀 얼굴에
날씬한 미모를 가진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불교공부에 심취하여 결혼도 미루고 미얀마에 와서 7년 째
생활하고 있는데 부모님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아니 무슨 불교공부를 꼭 이 고생을 하며
해야 되느냐. 그리 열심히 했으면 지금쯤은 종교적 지도자나 무슨 도사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녀를
다그친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자기가 행복해 지기위해
하는 공부인데 무슨 결과가 필요 하느냐고 우리에게 되물었다.
하늘이 투명하고 가을이 깊어가는 이 밤. 정말 내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야겠다. “진정 당신은 행복한가요.”
< 에세이21 > 201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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