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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서생원의 변

by 아네모네(한향순) 2016. 2. 18.

 

 

 

서생원의 변

 

                                                                                                            한 향 순

 

 

 

우리가 자라던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나이를 물어보면 무슨 년 생 몇 살이라는 12간지의 띠까지도 말하곤 했다.

요즘은 아이들은 자기가 태어난 해의 띠를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몇 살부터인지 모르지만

내가 무자(戊子)생이고 쥐띠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나의 띠가 잘생기거나

힘이 센 동물도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혐오하는 조그만 쥐띠라는 사실이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누가 무슨 띠예요?”라고 띠를 물어오면 쥐 띠 인데요.”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언제 부터일까. 아이들이 자기의 이름을 알아듣고 나이를 인식하게 되는 시기를 가늠해 본다.

우리는 처음 만난 아기들을 보면 흔히 너 이름이 뭐니?”라거나 너 몇 살이니?”라며 친숙하게 말을 건넨다.

그러면 아기는 손가락을 펴 보이며 세 살이라거나 네 살 이예요.”라고 수줍게 대답한다.

아이들은 자기의 이름과 나이를 알아가면서 조금씩 자이를 형성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12간지 중에 첫 번째인 쥐는 부지런하고 영특한 동물로 전해지고 있다. ‘유교황재설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가 여러 짐승들을 소집하고 정월 초하루 아침 나한테 세배하러 와라.

빨리 오면 일등상을 주고 12등까지는 입상하기로 한다.”고 말했다.

많은 동물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머리를 쓰고 눈치를 보는 동물들도 있었다.

 달리기 경주라면 소는 자신이 없었다. 말이나 개나 호랑이에게는 어림도 없고, 돼지 토끼에게도

이길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는 남보다 일찍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직한 소는 남들이 다 잠든 그믐날 밤에 길을 떠났다. 덩치 큰 동물들 사이에 끼어 어떻게 하면 1등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던 쥐 역시 도저히 어렵다는 판단에 가장 열심히 운동하는 동물의 덕을 보리라 마음먹었다.

 눈치 빠른 쥐는 소의 계략을 알아채고 마구간으로 잠입해 소꼬리에 붙어 있었다.

드디어 동이 틀 무렵 소가 옥황상제의 궁전 앞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쥐는 날쌔게 소의 한발 앞으로 뛰어 내려 가장 먼저 문안에 들어갔다.

밤낮없이 끈기 있게 달린 소를 제치고 1등이 된 것이다. 1등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한 호랑이는

천리를 쉬지 않고 달렸지만, 3등이 됐다. 달리기에 자신이 있는 토끼는 도중에 낮잠을 자는 바람에 4등이 됐고,

그 뒤를 이어 용, , , 원숭이, , , 돼지의 차례로 하늘 문에 들어서 입상하게 됐다고 한다.

 

음양오행사상은 동양문화권에서 우주인식과 사상체계의 중심이 되어 온 원리이다.

아무런 형체가 없던 무극에서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다섯

가지 원소를 생산하였는데, 이것이 목, , , , 수의 오행이다. 따라서 오행의 하나하나에는 음과 양의

두 기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2간지의 순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래되기도 했지만, 음양오행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는 특이한 동물로 인식된다. 음양오행은 발가락 수를 통해 12간지의 순서를 배치했는데,

세상 동물 중에 앞발은 4개이고 뒷발은 5개인 한 몸에 다른 발가락 수를 갖고 있는 동물은 쥐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아무튼 나의 띠가 쥐띠라는 것에 오랫동안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무심코 하신

말씀 중에 쯧쯧 쥐가 밤에 태어나야 먹을 것이 많은데, 하필 아침에 태어나 배불리 먹기는 틀렸으니 어쩌니.

하시며 혀를 차시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배고픈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하던 시절이라 그 말씀은 내 가슴에 오래 상처로 남아있었다.

싫던 좋던 생일을 바꿀 수 없듯이 자신의 띠도 바꿀 수가 없으니 그냥 인정하고 좋은 점만 닮으려고 노력했다.

 

어느덧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려는데 부모님께서 궁합을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사람이라 결혼 상대자로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가 없어 많이 걱정이 되었다.

혹시 궁합이 나쁘다고 부모님이 반대를 하시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랑 될 사람의 생년월일을 알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희색이 도는 얼굴로 들어오시더니

우리의 결혼을 쾌히 승낙해 주셨다.

 

이유는 쥐띠인 나와 네 살 위 원숭이띠인 신랑감은 따져 볼 것도 없이 좋은 궁합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결혼 한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는 무탈하게 살고 있다. 더구나 살아오면서 힘들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밥을 굶는 일은 없었으니 이만하면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모든 사물에는 양면이 있듯이 어느 띠라고 좋고 나쁨이 따로 있겠는가. 비록 어두운 그늘에서 남의 것을

훔쳐 먹는 혐오동물인 서생원도 약삭빠르고 부지런하며 이가 발달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는 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띠를 밝힐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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