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과 편견
한 향 순
수영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어디서 본 듯한 남자를 만났다. “아 며칠 전, 제 수경을 고쳐주신 분이죠?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수영장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얼른 알아보지 못했지만 전날 표현하지 못한
고마운 마음을 남자에게 전했다. 그제야 그도 나를 알아보았는지 “아~ 예 뭘요,”라며 수줍은 듯 말끝을 흐렸다.
그날은 강습이 없는 날이어서 수영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모처럼 자유수영을 하려고 수영장을 찾았는데,
수경을 쓰다 보니 안경의 고무 테두리가 빠져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두운 눈으로 고무패킹을 끼우려고 했지만
한쪽을 끼우다 보면 한쪽이 튕겨 나가고 잘 맞춰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준비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왔는데 그냥 나가기도 섭섭해서 한참동안 수경을 고쳐보려고 애를 썼다.
마침 같은 레인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젊은 친구가 있기에 수경을 내밀며 고무패킹을 좀 끼워달라고 했다.
그 친구도 한동안 수경을 들고 씨름을 하더니 잘 안되는지 옆 레인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시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 시간에는 여자회원들의 수영강습이 있는 날이라 남자회원은 없는데, 그 사람은 왜 그곳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수경을 넘겨받은 그도 고무패킹을 끼우려고 애를 쓰는데, 잘 안되는지 끙끙거리고 있었다.
공연히 남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괜찮으니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들은 체도 않고 이십 여분쯤 씨름을 하더니
드디어 고쳤다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수경을 내밀었다. “수영도 못하시고 너무 애쓰셨네요.”했더니
그는 오히려 자기에게 맡겨줘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때야 자세히 그 사람의 얼굴을 보니 가끔 주부들 강습시간에
혼자 어린이 풀에 와서 첨벙첨벙 수영연습을 하던 사람이었다.
한동안 그는 여자들 사이에서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주부들의 강습시간에 남자가 들어와
그것도 유아용 풀에서 수영연습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은 그를 뻔뻔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빈정거리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도 하루 이틀이라고 반응이 없는 상대에게 관심이 적어지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그가 들어와서 수영을 하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날은 유아용 풀이 아니어서 그 사람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모처럼 레인이 비어있어 이쪽에서 해봤는데
50미터를 쉬지 않고 돌았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한 자기는 근육이 위축되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데 재활치료 겸 수영을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발음도 시원치 않고 걸을 때도 민선 아빠처럼 종종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또래의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예전에 같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이 있었다.
나중에는 남편들까지 서로 알게 되어 부부끼리 일주일이 멀다하고 산행을 하거나 십년이 넘도록 여행을 다녔다.
그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민선 아빠는 재치도 있고 유머가 많아 나에게 “행님아~”하며 우리의 모임을 재미있는 분위기로 유도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몇 년 전부터 행동이 굼떠지고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도 제일 늦게 오고 산행 뒷정리도 전혀 하려들지 않았다.
우리는 한때 막내가 일을 하기 싫어 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점점 증상이 심해지더니 잘 걷지를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알게 된 병명이 파킨슨병이다.
한창 일할 나이인 오십대에 그런 병을 얻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진단이 잘못 되었을 거라며 병원을 믿지 못하고 민간요법을 찾아다니며 방황도 많이 했다.
패기에 차있던 그에게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인정하기도 싫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병은 더 깊어지고 그들 부부는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자연히 우리의 산행모임도 중단되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우리도 안타깝기만 했다. 갑자기 찾아온 병마로 부부는 의견충돌이 잦아지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점점 더 힘들어 했다.
주위 사람들은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내어 그들을 도우려고 했지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서로에게 편견만 안겨줄 뿐
그들 부부를 더 힘들게 했다. 몇 년이 지난 요즈음은 그래도 꾸준한 병원치료의 효과로 불편하지만 일상적인 거동은 하고 있다.
며칠 전, 송년회 겸 우리 부부와 만난 후 헤어진 민선아빠한테서 문자가 왔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를 항상 누나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변함없이 잘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에 자칫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힐 수가 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상대를 보아주고 이해해 줄 수 있을 때, 낯선 타인과도 조금씩 소통의 길이 트일 것이다.
'나의 글모음 > 수필집 ( 인연의 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일럿피시 (0) | 2016.09.07 |
---|---|
간절한 소망 (0) | 2016.07.20 |
서생원의 변 (0) | 2016.02.18 |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0) | 2015.12.27 |
당신은 행복한가요? (0) | 2015.12.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