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피시
한 향 순
며칠 전에 TV 화면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거세게 시위를 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이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그냥 화면을 돌리려다가 멈칫했다.
어느 젊은 엄마의 애끓는 표정이 클로즈업 되었는데, 무심코 보고 있다가 기억 저편에
숨어있던 얼굴이 생각나서 가슴에 아린 통증이 일었다.
가습기 살균제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사용하다가 어린자식을 잃었다면
어느 어미인들 정신이 온전할 리 있겠는가.
TV에서 울부짖는 젊은 여인을 보면서 떠오른 기억은 35년 전, 젊은 날의 나의 모습이었다.
일곱 살짜리 아들이 사고로 눈을 다치고 하루하루 증세가 나빠지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은 타들어가고
너무도 큰 슬픔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사고의 원인을 파헤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고,
어떤 종교라도 매달리고 싶었던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쓰리고 아팠던 기억도 세월이 흐르니
더러는 잊고 상처가 아물면서 내 기억 속 심연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화면에 보이는 젊은 엄마의 얼굴을 보자 문득 그때의 생각이 난 것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파일럿 피시’라는 소설 속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인간의 몸 어딘가에는
모든 기억들을 담아놓는 거대한 호수 같은 곳이 있고, 그 밑바닥에는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무수한 기억들이 앙금처럼 쌓여 있다. 잠에서 막 깨어 아무 생각도 없는 아침,
아주 먼 옛날에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을 기억이, 호수 밑바닥에서 별안간 두둥실 떠오를 때가 있다.”는 대목이었는데,
그날 나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주변에 정성껏 열대어를 기르는 친구가 있다. 열대어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어항 속에
파일럿피시를 넣고 열대어가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 후에 자기가 기르려는 열대어를 넣는다고 했다.
파일럿피시는 물고기의 이름이나 종류가 아니고, 특수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물고기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관상어를 기르는 사람들이 키우고자 하는 열대어를 위해 생태계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려고
파일럿피시를 수조에 넣으면 물고기의 배설물이 물속에 녹아 열대어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너무 깨끗한 물은 오히려 물고기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물고기가 살던 환경과 비슷한 생물학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파일럿피시는 보통 일주일 이상을 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물론 그 어종들도 생물이기에 부적합한 수족관 환경에 적응 못하고 죽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면 저절로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은 값이 싸고 흔한 물고기를 파일럿피시로 택한다고 한다.
다른 물고기의 쾌적한 삶을 위하여 시험용으로 살다가 죽게 되는 파일럿피시의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만약 사람에게도 파일럿피시 같은 희생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얼마나 비극적인 삶일까.
누가 누구의 삶을 좀 더 윤택하고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희생을 한다는 것은 가족이라고 해도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물질만능의 세태에는 거액의 돈으로 매수하여 파일럿피시의 삶을
강요당하는 검은 유혹도 있을 것이다.
의학계에서는 실험용으로 주로 흰쥐를 이용하지만, 간혹 신약개발을 위해서는 임상실험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세계의 우수 제약회사들이 인도 빈민가의 사람들을 매수하여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서 전 세계의 질타를 받은 일이 있다. 그뿐인가 세계 제 2차 대전 때는
독일의 홀로코스트나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도 생체실험에 희생되곤 했다.
한국인이 대부분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다룬 <동주>라는 영화를 보면 윤동주는 사촌 송몽규와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서 후쿠오카 형무소에 복역하게 된다.
그러나 평소에 건장하던 동주는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으며 감옥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나중에 들리는 말은 윤동주가 인체 실험에 이용되었다는 안타깝고 분통 터지는 소식이었다.
윤동주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일본의 731부대는 한국인들을 마루타로 이용하여 생체실험을
자행하는 악랄한 부대였는데, 아직까지도 일부의 일본인들은 그들을 영웅시 한다고 한다.
인류 문명은 나날이 발전하고 앞으로 로봇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편히 살자고 누군가를 파일럿피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명은 아무도 대신 할 수 없을 만큼 유일하고 귀중하기 때문이다. 화면 속의 가해자들도
자기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인체실험이 된 아이의 부모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2016년 <계간수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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