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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올케의 젖은 손

by 아네모네(한향순) 2017. 3. 26.




올케의 젖은 손

 

한 향 순

 

목탁소리와 함께 염불을 하는 스님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크게 느껴진다.

요즘 허리가 많이 아파서 법당에 앉아 오랜 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걱정을 하고 왔는데,

세월이 변해서인지 법당 안에도 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오늘은 친정어머니 제삿날이다.

 그동안 제사를 모시던 남동생이 많이 아파서 어머니 제사를 절에서 모시게 된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형제들이 종교는 다르지만 어머니가 독실한 불자였기에 어머니의 뜻을 따라 절에서 제사를 모시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벌써 열 번째 제사이니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남동생은 오랜 지병으로 병석에 있었다, 그래도 연로하신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으니 행여나 동생이 회복되기를

기대하였는데, 동생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올케의 헌신적인 간호와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동생은 벌써 세상을 뜨고 말았을 것이다.

35년 전, 홀시어머니와 동생들을 건사해야 하는 집안에 올케는 맏며느리로 들어왔다.

그러나 성품이 워낙 온순하고 착해서 형제들하고 다툼 한번 없이 어려운 집안을 잘 꾸려나갔다.

아버지가 안 계신 집안의 맏이로 늘 어머니와 동생들 걱정이 많았던 나는 손아래 올케가 그저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그녀는 시집을 와서 넉넉지 않은 집안을 꾸려가느라 늘 동동거렸고, 남동생이 아프기 전까지는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느라

친구들과 놀러 다니거나 여행 같은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럭저럭 아들도 크고 집안 형편도 나아지던 즈음, 동생이 덜컥 아프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올케는 간호사로

천직을 타고난 사람처럼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보살피고 간호를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젊은 시절 동생이 올케한테 자상하거나 다정한 남편은 아니었다. 그저 무뚝뚝하고 멋대가리 없는

보수적인 남편인데다 술을 좋아해서 올케 속을 많이 상하게 했다.

더구나 시어른과 함께 사는 집안에 들어와 올케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고 힘들게 살아왔는지 알기에

그저 올케한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그녀는 집안 대소사나 무슨 일이 있으면 손위 형님이라고 늘 나와 의논을 했는데

 내 앞가림하기에 급급하여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은 치매에다 여기저기 많이 아프셔서 모시기가 아주 힘들었다.

가끔 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셔오기도 했지만 한집에 아픈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으니 그녀의 희생이 없었다면

집안에 커다란 분란이 생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제 애지중지 기르던 아들도 결혼하여 분가를 하였고 그녀도 편하게 지내야할 처지이건만

남편의 간병 뒷바라지 때문에 꼼짝을 못하니 옆에서 보는 사람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구나 동생은 신장이 나빠서 집에서 네 시간마다 복부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잠시 집을 비우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다.

오늘도 올케는 제사가 끝나자 남편의 투석시간이 늦었다며 허둥지둥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도 오랜만에 병석에 있는 동생을 만나려고 올케와 동행을 하고 보니, 그간 동생은 더욱 수척해져서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더구나 몇 주 전, 당뇨발로 발가락 절단 수술을 하고 겨우 기운을 차리는가 싶더니 또 다른 곳이 화농이 되어 퉁퉁 부어있었다.

올케가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하는데도 이제는 모든 것이 한계에 이른 것인지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기를 막다보면 엉뚱한 곳이 말썽을 일으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남편이라지만 긴병에 효자 없다.”고 이제는 올케도 지칠 때도 되었건만 그녀는 결코 남편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전보다 더 극진하게 환자를 돌보아서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올케의 모습을 보며 나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된다.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어 여기저기가 고장 나기 시작한 우리 부부도,

 언제 병마에 발목을 붙잡힐지 모른다. 어느 때 닥칠지는 모르지만 둘 중에 누구 한사람이 아프면 자동적으로 한 사람은

보호자가 되어 병수발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해오던 운동이나 취미생활은 모두 접고 오직 상대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가 만약 그런 입장이라면 나도 올케처럼 남편에게 올인 할 수 있을까하고 자문을 해본다.

 물론 정작 당해보지 않고는 무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별로 자신이 없다. 누가 아프고 싶어서

병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부부는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각자 알아서 건강관리 하자고 다짐을 했다.

올케의 손은 늘 물기에 젖어있고 뭉툭하고 거칠다. 한 번도 손톱에 색칠을 하거나 기른 적이 없는 데다,

힘이 들어서인지 관절 마디마디가 울퉁불퉁하게 튀어 나왔다. 그러나 그 손은 위대한 손이다.

내일은 올케에게 핸드크림이라도 사주어야겠다.

 

 

2017년 봄호 < 에세이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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