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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어머니의 봄

by 아네모네(한향순) 2017. 5. 9.






어머니의 봄

 

                                                                                                                     한 향 순

 

어느덧 4월이다. 거리에는 꽃들이 피어나고 마른나무 가지에서도 파릇파릇 연녹색 이파리들이 꼬물꼬물 터져 나오고 있다.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다시 오고 바뀌는데, 인생의 봄은 어찌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지 심란한 요즈음이다.

 오늘도 삭정이처럼 마른 어머니의 팔을 주무르며 가슴이 저려온다.


두어 달 전, 구순이 넘은 시어머님이 넘어지셔서 고관절을 다치셨다. 연세가 많으셨지만 아직 정신도 또렷하고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었다.

가족들 모두 걱정이 컸지만 요즘 의술이 발달하여 수술을 하면 그런대로 다시 걸을 수 있다고 하여

긴 시간동안 수술을 받으셨다. 다행이 수술 예후가 좋아 보여서 기력만 찾으시면 다시 일어나실 것 같았다.


러나 사람도 노후 된 기계처럼,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기를 다행히 수습하고 나면 다른 데가 말썽을 부렸다.

수술 후, 한동안 폐렴증세가 나타나서 식구들이 얼마나 애를 태우고 걱정을 했는데 폐렴증세가 좋아지고 나니

또 다른 곳이 말썽을 피웠다. 수술한 부위가 잘못되어 다시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갑자기 환경이 바뀌고 여러 사람이 들락거리는 병원생활을 하다 보니 불안해서인지 엉뚱한

말씀을 하여 가족들을 놀라게 한다.


어느 날 어머님이 빨리 떡을 쪄서 여기 온 손님들을 대접하라는 것이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과 간병인들을 집에 찾아온 손님으로 착각하신 거였다.

우리는 놀라서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니 연로하신 분들이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섬망이라는

착란증세가 종종 나타난다고 했다.

그것은 일시적인 증상으로 심신이 안정되면 금방 좋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수도 거의 없어지고 기억력도 갑자기 떨어져서 방금 전에 한말도 잘 기억하지 못하셨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말수가 많지는 않으셨지만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아두지 못하는 직선적인 성격이셨다.

내가 결혼을 하여 처음 시댁에 갔을 때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불을 때서 밥을 짓는 시골집이었다.

도시에서 자란 내가 난생처음 해보는 불을 지피는 일도 서툴고 두레박질을 하는 것도 서툴렀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그때는 잔치도 많고 손님 치를 일도 많았는데 내가 야무지게 일을 못하니

어머니께 지청구도 많이 받았다.


더구나 어머니는 얼마나 재빠르고 부지런하신지 치마폭에서 휘파람소리가 난다고 동네에서 소문이 난분이었다.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 많은 농사와 밭일을 거의 혼자 힘으로 일구셨다.

 한 번도 편하게 앉아 쉬는 법이 없이 늘 일속에 파묻혀 살던 분이었다.

그렇게 부지런한 분의 눈에 모든 것이 어설프기만 한 내가 마음에 들 리 없었겠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으면

둘째 며느리인 나만 호출을 하셨다.


농번기에 모심기를 하거나 일손이 바쁠 때에는 언제나 나를 부르셨는데, 젊은 시절에는 그것도 큰 불만이었다.

 감히 거절은 못하고 왜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일도 못하는 나를 부르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자주 뵙다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여 어렵기만 하던 어머니와 조금씩 벽이 허물어졌다.


어쩌다 시댁에 다니러 가면 어머니는 늘 밭에 계시거나 일을 하고 계셨다.

자식들은 어머님이 고생하시는 것이 안쓰러워서 어머니 이제 연세도 있으니 힘든 일 좀 그만하세요.”라고 하면

 죽으면 썩어질 몸, 아껴서 무엇 하냐?”하시며 몇 년 전 까지도 일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렇게 팔팔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기운이 떨어지신 건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부터이다.

병석에 계시던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이제 어머님도 편하게 이집 저집 다니시며 여행도 다니신다고 했다.

그러나 할 일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계시거나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이 달라져 갔다.

우리는 어머니가 허탈감에 우울증을 보이는가 싶어 여행도 모시고 다니고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빠지셨다.


어머니의 기운과 자존감을 지탱하던 힘이 일이었던 것처럼 할 일이 없어진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아무리 맛난 것을 해드려도 식욕을 잃으셨고 매사에 의욕이 없으셨다.

힘든 시절에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어렵게 자라셨다는 어머니. 가정을 꾸려 8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가르치고

 키우시려면 한시도 긴장을 풀지 않고 사셨을 것이다.

 더구나 자식들에게는 어찌나 끔찍하신지 늘 동동거리며 농사일을 해서 양식과 먹거리를 대주셨다.

한평생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나신 분처럼 그렇게 일만 하시다가 막상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할 처지가 되니

삶의 의욕을 잃고 허탈감에 빠지셨던 것이다.


평생 근검절약하고 일만하며 살아오신 어머니. 그분의 삶의 촛불이 점점 수그러들고 있는 요즘 마음이 아주 무겁다.

아무리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핀다 한들 어머니의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몇 년 만 더 사셨으면 하는 자식들의 바람도 어쩌면 욕심일지 모른다.

그나마 남은 어머니의 봄이 고통스럽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2017년 5,6월호 <그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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