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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간절한 소망

by 아네모네(한향순) 2016. 7. 20.

 

 

 

간절한 소망

          

 

                                                                                                                                                                                              한 향 순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병원 예약시간은 다가오는데

교통체증으로 차들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비가 와서 차가 밀릴 것을 계산하고 미리 집을 나왔는데도 도로공사까지

겹쳐서 차들은 거의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마음은 조급하고 애가 타는데도 차안에서 어쩔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한 CT검사는 어떻게 나왔을까 혹시 큰 병이라고 하면 어떡하지.

머릿속은 여러 생각으로 복잡하고 심란하기만 했다.

 

겨우 대학병원 입구까지 다다르니 여기저기서 온 차들이 한꺼번에 뒤엉켜서 진퇴양난을 겪고 있었다.

나도 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차를 내려서 뛰어가고 싶었다.

얼마나 급했을까 도로 한가운데서 택시 문이 열리더니 중년여인이 쓰러지듯 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쥐고 있던 묵주가 길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여인은 그것도 모르고 병원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머 저걸 어떡해. 저기 저기요.”

 나는 급히 창문을 내리고 큰소리로 여인을 불렀으나 쏟아지는 소음 때문에

그녀는 듣지 못하고 황망한 발길로 병원을 들어서고 있었다.

길에 떨어진 묵주만 비에 젖어 처연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묵주를 주워서 주인한테 돌려줄 수 있을까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 묵주는 오랫동안 주인 손에 길들여지며 수많은 기도를 인도 하였을 텐데 주인은

그것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황망하게 가다가 얼마나 놀랬을까.

잠시 동안이지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분명히 그 여인은 택시 안에서도

아픈 사람을 위해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를 하다가 차가 밀리니 조급한 마음에

도로에서 문을 열고 뛰어 내렸을 것이다.

그 허둥거리던 뒷모습을 생각하면 그의 가족이 위중한 병을

앓고 있거나 사경을 헤매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내 앞에서 우회전을 하던 차의 바퀴에 묵주가 깔려서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왜 그리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치 여인의 염원이 저렇게 부서지고, 불길한 일이 그녀를 막아 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가슴에 아릿한 통증이 왔다. 오래 전, 나도 하찮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리고 싶던 절박한 때가 있었다.

 

하루하루 병세가 나빠져 가는 아들아이를 병원에 눕혀놓고 나는 무엇에라도 매달리고 의지하고 싶었다.

그때까지 별다른 종교생활을 하지 않았던 터라 기도를 하는 방법도 주님께 간구를 하는 방법도 몰랐다.

절에 열심히 다니시던 어머니는 부처님께 매일 기도를 하셨고 인근 교회에서 찾아온 이웃들은

우리 아이를 위해 금식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그때는 부처님도 좋고 예수님도 좋고 누구의 힘을 빌어서라도 아이가 회복되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아이의 병세는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내리막길로 치닫고 결국은 수술실로 아이를 보내놓고

 나는 미친 듯이 병원 근처에 있는 성당을 찾았다. 그리고 기도라기보다는 주님께 울부짖고 매달렸다.

그일 후로도 여러 해가 지나서야 우연한 기회에 교리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지만,

 내 성격처럼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지 못했다.

 

몇 해 전에 프랑스 루르드에 있는 성모성지를 간적이 있었다.

루르드는 베르나네트 수비루라는 소녀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메시지를 전해주신 곳이다.

가난한 방앗간집의 맏딸로 태어난 소녀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여 문맹이었고,

제대로 종교 교육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소녀가 강변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았다.

 맞은편 동굴에 어떤 여인이 서 있었는데,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색 허리띠를

두른 여인의 등 뒤로 알 수 없는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고 했다.

 

루르드는 1862년 로랑스 주교에 의해 공식적으로 성모 발현을 인정한 순례지가 되었다.

루르드에 도착하니 유난히 흰옷에 흰 머리 수건을 쓴 여인들이 많았는데,

곳에서 몇 달씩 생활을 하며 병자들을 돌보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모두 아픈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도 기도를 하러 왔다가 자기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보고 자원봉사를 결심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루르드에서는 어딜 가나 휠체어를 탄 병자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침수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줄이나, 성체조배를 받으려는 곳에도 휠체어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비가 뿌리는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대부분 촛불을 밝혀들고

성당을 돌며 간절한 소망을 빌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몸의 치유뿐 아니라 마음의 치유도 필요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차안에서 내리다가 묵주를 잃어버린 여인도 어쩌면 앞으로 닥칠 두려움과 공포에서

위안을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묵주를 보며

그래도 그 여인의 간절한 소망만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2016년 7,8월호 < 그린 에세이>

 

 

 

읽는분의 편의를 위해 문단을 파기하고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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