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모음/포토기행(길에서 길을 생각하며)

죽음의 계곡 (데쓰밸리)

by 아네모네(한향순) 2017. 9. 20.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

 

                                                                                                                                                  한 향 순

 

데스밸리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기온은 후끈하게 달아올랐고 땅은 뜨겁고 건조하였다.

이곳이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라고 불리게 된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를 휩쓸던 골드러시 때였다고 한다.

금광을 찾아 이동하던 많은 사람들이 유타 주에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으려다

높은 기온과 척박한 지형 때문에 이곳에서 많이 죽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데스밸리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에 걸쳐있는 국립공원인데,

전체 길이가 220km이며 넓이는 무려 제주도의 7배에 달한다.

또한 해발이 -85m로 북미에서 가장 낮고 가장 건조한 지역이다.

한때는 기온이 섭씨 56.7도까지 올라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또한 세계에서 강수량이 제일 적고 기온이 높아 여름에는 차량 출입을 제한할 만큼 위험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다행이 우리가 미국을 찾아간 때는 겨울이어서 그런 고통스러운 더위는 없었지만

겨울날씨라고는 생각하지 못 할 만큼 따뜻했다.

데스밸리에서 장엄한 일출을 보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서 한밤중에 출발한 우리는 힘들지만 강행군을 하기로 했다.

푹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운전을 하는 기사 겸 안내인은 누적된 피로가 겹치는지 자꾸 하품을 하였다.

 우리는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큰길에서 벗어나 주변 갓길로 들어서 잠시 눈을 부치려고 차를 정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어떤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밖에 있던 가이드와 무슨 말인가 한참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헌병이 우리가 있는 차로 다가와서 문을 열고 총을 겨누더니 모두 손을 위로 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당한 일에 황당한데다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가 않아 우리는 여행객인데 무슨 일이냐고 항의를 하였더니

가이드가 황급히 모두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위로 올리라는 것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가 총을 빼는 줄 알고 그대로 발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무슨 무섭고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하는 수없이 우리는 액션 영화에서 본 범죄자처럼 모두 손을 들어 위로 올렸다.

 그리고 한 30여분 동안 영문도 모르고 공포와 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해외여행을 왔다가 이런 일도 겪는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겁이 나기도 했다.

한참 있다가 군 고위층이 직접 나오고 여권확인을 하더니 돌려보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겁에 질려있던 우리의 가이드가 그곳을 빠져나와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영화 같은 스토리였다.

캄캄한 밤중에 우리 일행이 잠시 쉬어가려고 들어 간 곳은 핵무기 시설이 있는 곳이라 아무도 접근을 못하게 하는 곳인데

우리 가이드가 한밤이라 그것을 모르고 진입을 하여 그런 해프닝을 벌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외국인이며 모두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으니 더욱 의심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이 여권 확인을 통해 신분이 밝혀졌기에 그나마 그냥 돌려보냈다고 한다.

가이드의 사건의 전모를 들은 우리는 십년감수한 기분으로 가슴을 졸이며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맨 먼저 데스밸리의 대표적인 모래언덕 메스키트 플랫 샌드 듄스(Mesquite Flat Sand Dunes) 찾았다.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이기도 한 데스밸리의 한가운데 있는 샌듄은

다른 행성을 엿보는 것처럼 황량하고 처절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억겁의 세월동안 침식된 계곡은 물에 씻겨 모래를 만들고 바람은 모래를 실어 날랐다.

바람에 실려 온 모래들은 주변의 높은 산들 때문에 도망가지 못하고 쌓여서 고독한 모래 언덕을 만들었다.

동이 트기 전 분홍빛 여명이 샌듄을 비출 때 우리는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거운 촬영장비에 삼각대까지 들고 사막을 오르면서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거친 사막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발은 자꾸 모래 속에 빠지고 겨우 하나의 언덕을 오르고 나면 또 다른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어느덧 산위로 일출이 시작되고 아름다운 모래언덕의 곡선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빛을 받은 사막은 여체의 부드러운 곡선처럼 구불구불하게 뻗어 절대고독이 지닌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람이 휩쓸고 간 사막의 흔적은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고, 선과 이어져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절경을 만들어 낸다.

절대고독 속에 무엇인들 몸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더위에 강한 몇 가지 풀포기들만이 생명력을 증명하며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샌듄을 떠나 다음으로 찾는 곳은 베드워터 베이슨이었다.

이곳은 바닷물이 증발한 자리에 남은 광활한 소금밭이 장관인 곳이다.

나쁜 물 (Bad Water)’이란 지명이 붙었을까 너무나 궁금했는데, 입구에 그 이유가 설명된 표지판이 있었다.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난 사람들이 베드워터를 멀리서 보고 물이 흐르는

계곡인 줄 알고 한걸음에 달려왔으나, 것은 물이 아니라 소금 사막이었다.

베드워터에는 아직도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먹을 수 없는 물이라 당시 이 물을 먹고 사망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멀리서 바라보니 하얗게 뻗어있는 모양이 영락없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같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만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도 밑으로 내려가서 길게 뻗어있는 하얀 소금사막을 걸어보았다.

베드워터는 해발이 -85미터라고 하는데 처음엔 주위의 산에서 내려 온 물이 모여 호수가 되었던 곳에

가뭄이 들자 수분이 모두 증발해버리고 지금은 하얀 자국만이 남아 있다.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울퉁불퉁한 하얀 소금 결정체들이 남아 있고,

이 척박한 땅에서도 생명력이 강한 염생 식물들이 더러 자라고 있었다.


황량하고 처절해서 더 아름다운 곳 데스밸리. 거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죽음의 계곡에서 나의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의 삶의 골목에는 어떤 복병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밤 우리가 길을 잃어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서 겪을 뻔 했던 봉변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오싹해진다.






2017년 9,10 월호 <여행작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