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의 땅에서 만난 오로라
한 향 순
차가운 빙하와 뜨거운 화산이 공존하는 신비의 나라. 아이슬란드의 꿈을 꾸게 된 건 어느 사진집에
실린 작품을 보고 나서 부터다. 아이슬란드는 나라 이름처럼 굉장히 추울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평소에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감히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북극권에 가까이 있지만 실제로는 멕시코 만류에 영향을 받아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띠고 있다.
한겨울에도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에도 덥지 않은 서늘한 날씨이다.
그러나 섬나라답게 날씨가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맑은 날이 별로 없고 비바람이 강해서
사진촬영을 하기에는 아주 힘든 날씨와 여건이었다.
드디어 2017년 2월 말경, 8명으로 사진출사 팀이 모아졌고 리더가 차를 렌트하여 안내를 겸해
직접 운전을 맡기로 했다. 인천공항에서 런던까지 12시간 정도 비행을 한 후,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3시간을 더 가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도착한다.
긴 비행에 지쳐서 카플라빅 공항에 도착하니 9시간이나 시차가 나는데도 어느덧 캄캄한 밤이 되었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호텔주변을 돌아보니
밤새 눈이 왔는지 온 세상이 눈부신 하얀 색이다.
그때부터 아이슬란드의 신비한 설경을 보며 링로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여정은 시작되었다.
링로드는 아이슬란드의 1번 국도이며 해안가를 끼고 도는 반지모양의 일주 도로이다.
이 나라의 눈은 먹어도 될 만큼 정말 깨끗하고 순백색이다.
공해가 없어서인지 잘 녹지도 않아 거리 곳곳에는 눈을 치우는 차들이 자주 눈에 띠었다.
도심을 벗어나자 하얀 설산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고,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그린란드 사이에 위치한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는 고립무원의 섬나라이다.
해안에는 톱니 같은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해 있고, 섬의 중앙부와 동쪽 일부는 빙하로 덮여 있다.
이 나라는 대서양 중앙해령이 지나는 곳에 발달한 열점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졌으며,
이 때문에 아직 활동하는 활화산도 많다. 2010년에는 화산이 폭발하여 유럽에서 항공 대란이 발생하였다
아이슬란드는 얼음의 땅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지하 여기저기서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불의 나라이다.
가이저라고 불리는 간헐천이 여기저기서 솟구쳐 오르고 있어, 온천처럼 땅에서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
아이슬란드의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보다 약간 크지만, 인구는 50만 명 남짓이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1인당 전력 소비량은 세계에서 단연 1위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또한 난방 걱정이 없다.
약 90프로가 지열 에너지로 난방을 하기 때문이다. 지하에서 나오는 물은 겨울에도 노천 온천이나
노천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하다.
우리는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서 스나이펠스네스반도 쪽으로 올라가 숙소를 정한 후,
뾰족한 산 키르큐펠과 폭포인 키르큐펠포스를 보기 위해 가파른 산을 올라갔다.
아이슬란드는 어딜 가나 아이젠이 필수품이어서 아이젠을 착용했는데도 언덕은 아주 미끄러웠다.
이곳의 겨울은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 특성 때문에 벌써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몰촬영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짐을 풀려고 하는데,
리더가 급히 촬영준비를 하고 차에 타라고 한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늘 밤에 날씨가 좋아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 모르니 오로라 헌팅을 나가자는 것이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데,
수시로 변하는 예보 중에 오로라지수가 5 이상이면 일단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는 날씨가 변덕스럽고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어느 여행객들은
한 번도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허겁지겁 촬영준비를 해서 차에 올랐다. 오로라는 라틴어로 새벽이라는 뜻인데,
새벽보다는 한밤중에 자주 출몰한다고 했다.
우주에서 태양폭풍이 일어나면 시속 160만km의 속도로 고온의 입자들을 방출한다.
지구의 자기장은 이 광폭한 태양풍을 맞아 최대한의 방어를 하는데,
태양이 방출한 입자 대부분은 지구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우주 저편으로 넘어가지만,
일부는 지구 자기장의 꼬리 부분에 저장돼 있다가 자기 폭풍을 일으키며 지구로 되돌아온다.
이때 지구 대기와 충돌하며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오로라이다. 그러나 오로라 역시 긴 세월 신화와 전설의 영역에 속했다.
오로라가 태양에서 방출한 입자선 때문에 생기는 자기 교란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차를 타고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는데 차장 밖을 보던 한 사람이 별안간 함성을 지른다.
“오로라다 오로라 ~” 마치 약초꾼이 산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흥분된 어조로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도 놀라 차에서 내리니 검은 밤하늘에 마치 초록색 띠를 두른 것처럼 선명한 오로라가 너울거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오로라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한 초록색으로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로라와 첫 만남은 마치 꿈속처럼, 영화 속처럼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그 신비한 장면을 놓칠세라 황망히 촬영을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깨비불처럼 신출귀몰하는 오로라를 따라 허둥거리느라 산길을 갈팡질팡했다.
길도 없는 들판은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고 촬영을 하기 위해 초점을 맞출 때 외에는 랜턴도 켤 수 없으니
오로지 하늘만 보며 도깨비에 홀리듯 오로라에 홀려서 눈밭을 헤매고 다닌 밤이었다.
게다가 일행 중에 여자는 나 혼자뿐이고, 우리 부부가 제일 연장자이니
나는 일행들을 따라다니느라 이를 악물고 초능력을 발휘해야했다.
오로라가 약할 때는 구름 띠처럼 색도 흐릿하고 느릿느릿 퍼지는데,
강할 때는 선명한 초록색으로 활성화 되어 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어느 때는 밤하늘에 화려한 초록색 커튼이 드리워진 것처럼 겹겹이 피어오를 때도 있다.
떠나오기 전에 이번 여행에서 신비스런 오로라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며 마음을 졸이기도 했는데,
막상 첫날부터 이렇게 멋진 장면을 보고나니 이번 여행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안도감과
어쩐지 오로라가 우리에게 행운을 안겨줄 것 같았다.
(다음호에 2부가 이어집니다.)
2017년 5,6월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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